谷神不死
깨달음은 정견 하나로 충분하다 본문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사실상 정견이 확보되고 나면 공부는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견(正見), 즉 바른 시각(視覺)과 바른 견해(見解)가 확립되면, 그다음의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정견(正見)은 사실상의 깨달음입니다. 바탕 의식을 보고(見性) 그 자리에 쉽게 머물 수 있게 되면, 나와 너 그리고 나와 사물과의 관계는 이미 원만함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팔정도의 시작에 정견(正見)이 있습니다. 애써 닦은 결과 얻어지는 것이 깨달음은 결코 아닙니다. 먼저 깨닫고, 그 후에 닦아가야 합니다.
선오후수(先悟後修)가 여러모로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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