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깨달음의 문 본문
깨달음은 꽃이 피어나듯이, 멀리서 종소리가 귀를 울리듯이, 애씀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문이 열린다.
깨달음을 위해서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대로 깨달음이다.
지금 여기, 시절 인연(時節因緣)을 만나라.
깨달음은 여기 이렇게 늘 있는 것(如如)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고, 텅 비어 있으며, 고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애씀이 필요치 않다. 진실(眞實)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려고만 한다. 깊은 삼매에 들어야 한다고 하고, 그것이 안 된다며 사회를 떠나고, 쉽게도 무문관(無門關)에 들고, 생각 없이 용맹정진(勇猛精進)에 돌입한다.
그렇게 해야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애를 쓰는 것은 나무랄 생각은 없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애쓰고 애쓰다, 결국은 그 자리(本來面目)에 이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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