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신앙과 의심 본문
세상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과, 의심으로 구원받는 사람,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필자는 이중인격자이다.
그는 믿음과 의심을 반반씩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온전한 신앙인이 되지 못했고, 시한부 종말론을 거부했다.
신앙인에게 의심은 금물이다.
신앙인에게 교리를 따지지 말라.
그들에겐 절대적 믿음, "믿습니다, 아멘"만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동기부여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요한의 침례 의식 중, 요단강 위에 나타난 비둘기 모양의 성령을 통해 자신이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임을 확인했다.
열려있다고 알려진 김기석 목사를 만나,
"어떻게 하면 믿음을 키울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게 되면 저에게도 알려주십시오"라고 답했다.
듣던 대로 멋진 목사였다.
그는 감리교 청파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기독교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최근 동성애를 인정해 이단시비가 붙은 목사다.
그의 믿음관은 일반적 목사들과는 다르다.
그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맹신을 거부한다는 것이고,
그가 개신교계로부터 비판 대상이 된 이유는 절대적 믿음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에 의한 구원보다는 사회적 참여에 더 관심이 있는 대승적 차원의 구원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교회에 신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닫혀 있는 신앙관 때문이며, 그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의 솔직함과 합리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수적 신앙을 가진 목사들에게 배척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타 신앙과 화합하고 그들과 대화를 꾀한다는 이유로 감리교단으로부터 목사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신자로서도 제명된 전 감리교신학대학 학장 변선환 목사의 제자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도 보수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구원받으셨습니까?"
기독교인들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아는 사람은 없다.
교직자들은 말하길, 믿음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가, 아닌가가 구원의 갈림길이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새벽기도에 빠짐없이 가느냐,
담대하게 노방전도를 하느냐,
생활비를 줄여 아낌없이 거액을 교회에 내느냐,
"믿습니다, 아멘"을 얼마나 자주 외치느냐,
그것이 믿음의 징표라고 한다.
하지만 겨자씨만한 의심이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것이 믿음의 약점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구원과 다른 구원관이 있다.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구원관이다.
구원을 바라는 그들의 태도는 다르다.
그들에게 의심은 절대적 무기이다.
그들은 의심을 통해 구원받기 때문이다.
수행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믿음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신(神)을 행한 것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 수행으로 이끄는 트리거(trigger) 정도의 믿음이면 충분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뭣고?"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두철미한 의심과, 기(氣), 즉 에너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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