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왜 죽은 자는 가만있는데 산 사람들이 다투는가? 본문

일상 속 바라봄

왜 죽은 자는 가만있는데 산 사람들이 다투는가?

thedaywemet 2020. 7. 22. 08:00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할 수 있어야 보수(保守)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옛것을 연구하고 익혀서 현실(現實)을 이해하고 처리(處理)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 말속에는 진보(進步)의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자들이 보수를 내세워 착취를 일삼고, 자기 것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연고로 <앞으로 나아간다>, <변화하자>라는 넓은 의미의 진보가 새롭게 출현했습니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K 씨가 말했다는 “스포츠카를 타고, 건물주가 되고, 폼 나야 하고 쫄지 않는 것”이 보수는 아니며, 아울러 “힘을 이용해 남의 돈을 받아먹고 부당한 성적요구를 하는 것”에 진보 간판을 단 사람들도 함께 나서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나라에 진보는 사라지고 못돼먹은 보수만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이쯤에서 막가자는 겁니까?
 
진보는 진보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진보하기가 불편하고 힘드니 모두 보수(?)로 전향해버리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밖으로만 나도는 못된 남편이 술 처먹고 가족들을 두들겨 팬다고 할지라도, 대찬 아내가 나서서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돌보아 온 것이 우리 사회의 미덕(美德)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자살은 전혀 개인적인 것인데, 왜 그것에 보수 진보의 색칠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포장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현행법상 죄를 저지른다든지 통념을 벗어난 일탈을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며 응분의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살했다고 해서 저지른 행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혹시 저질렀다면), 영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전적으로 본인의 문제이며 정견(政見)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짐을 하나 더 지우는 것이며, 잘못되면 신세대에게도 "저렇게 하면 간단히 해결되는구나!" 하는 오해를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 입장에서만 바라봐야 하며, 거기서 정치는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역으로 생각해 그보다 더 지탄받을 일을 하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한 사람들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이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롯이 당사자의 양심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말하듯 우리들의 것은 바른 양심이고 너희들의 것은 잘못된 양심이라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양심(?)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심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있습니다. 양심은 존재(存在)의 본 자리와 통(通)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며, 그 양심(良心)을 알아차린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일상 속 바라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론에서 배운다  (0) 2020.07.28
냅둬유~ 소나 주게유  (0) 2020.07.23
전생유감  (0) 2020.07.21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코드(code)  (0) 2020.07.19
양심적 병역거부  (0) 2020.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