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하늘은 학수고대한다 본문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채고(見聞覺知), 그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그것으로 인해 그 자리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자리에 머물 수만 있었다면 초견(初見)이다.
그것을 통해 선악(善惡)과 정사(正邪)를 벗어나 오롯한 체험을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경전(經典)이나 가르침, 교리(敎理)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 그 자리 속에 들어앉은 것, 그것을 가리켜 견처(見處)를 얻었다고 한다.
비록 그 자리를 체험했다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유지가 어려울 수는 있다.
첫째,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느냐이며, 둘째, 얼마나 절실했느냐로 판가름 난다.
체험하고 나서는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펼쳐내야 한다.
스승에게 반복해 묻고, 도반(道伴)들과 기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아울러 경전(經典)을 살피고, 선지식(善知識)들의 어록(語錄)은 물론 성경책(the Holy Bible)도 읽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는 다시 딜레마에 빠질 것이요, 유지한다 해도 독각(獨覺)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것, 세상사 모두 깨달음의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
하늘은 늘 우리가 깨닫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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