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체험이 있어야 한다 본문
선지식(善知識)들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어록(語錄)이나 경전(經典)들을 읽고, "아! 이것이 깨달음이구나"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아이스크림 맛을 본 사람으로부터 "아이스크림은 달고 시원하다"라는 말만 듣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善知識들이 "깨닫기 전에는 책을 보지 말라"고 한 이유입니다. 착각은 자유입니다만, 운(運)이 나쁘면 영원한 착각 속에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위해서는 어떠한 체험(體驗)이든 필히 체험이 필요합니다. 강렬한 체험보다는 은은하게 이어지는, 그것이 에너지를 만나면 선명도(鮮明度)가 더 확실해지는 그런 체험이 좋습니다. 너무 강한 것은 쉽게 스러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善知識들이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알아채는 것 등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꽃놀이를 하다가, 어떤 이는 뻐꾸기 소리에, 어떤 이는 사랑을 나누다가, 어떤 이는 지각(perception)에 의해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신불(信佛)이나 외부 어느 신령(神靈)스러운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니고 있던 깨달음의 씨앗이 見聞覺知에 의해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말하길, "나는 내가 부처라는 것을 아는 부처이고, 너희들은 부처라는 것을 모르는 부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스승이 있어야 깨닫기가 수월합니다. 그가 깨닫기 수월한 조건들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닭이 알을 깰 때 알 속의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 위하여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합니다.
물론 스승이 없이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독각(獨覺), 혹은 벽지불(辟支佛)이라고 하며, 경지에 도달하기는 하였으나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한계에 집착하여 자기만을 고집하고 중생들과 함께하지 못하며 자기 안락만을 추구하는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깨달음이 있은 후에는 善知識의 語錄과 經典들을 두루 보고 도반(道伴)들과 자기 깨달음의 경계를 내놓는 대화(法擧量))를 자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견성(見性) 후 저절로 일어나는 에너지(氣)를 잘 갈무리하여 성명쌍수(性命双修)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깨달음이 흐려지기도 하고, 또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에너지의 난조 때문입니다.
미리 에너지 공부를 해두면 깨달음 체험을 얻는 데도 유리하니 들은 것 읽은 것에 매몰(埋沒)되어서는 안 되며, 깨달음이면 다 된다고 착각하여 사람의 기초 구성요소인 정기신(精氣神)을 도외시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돈오(頓悟)는 체험을 동행(同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깨달은 사람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부꺼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어디에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도 가득합니다.
깨달았어도 공부해야 합니다.
앞차가 치고 나가면 비슷한 속도로 달려줘야, 뒤에 오는 차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법입니다.
'달과 손가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지는지 아는가? (0) | 2020.07.18 |
---|---|
하늘은 학수고대한다 (0) | 2020.07.17 |
근기가 약해 깨닫지 못한다? (0) | 2020.07.16 |
종교란 무엇인가 (0) | 2020.07.14 |
돈오와 해오 (0) | 2020.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