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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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바라봄

나는 요리사입니다

thedaywemet 2020. 6. 28. 08:00

나는 요리사입니다. 내가 해준 요리를 맛을 보며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먹으려고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까지 꺼내 요리해 줍니다.
 
나는 나보다 더 영양이 풍부하고 맛있는 요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바다 건너 마니산 밑에 살고 있어서 쉽게 만나기는 어려운 요리사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에겐 음식값을 받지 않지만 말입니다.
 
가끔 출장 요리도 해 보았는데 재미없어 그만두었습니다.
 
혼자 살고 있고, 그동안 모아 논 식자재가 풍부해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 마음에 드는 손님에게만 친절합니다.
 
더러는 “손님은 다음부터 여기 오지 마세요. 다른 식당을 이용하세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매우 불친절한 요리사입니다.
 
처음 오는 손님에게는 그저 아무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을 냅니다. 메뉴판에는 손님이 한 번도 맛을 보지 못했을 만한 음식이 가득하지만, 그가 주문한다고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몇 번 오고 나서 나의 심사(?)를 통과한 손님에게는 몸에 좋고 정력에도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음식을 냅니다. 아마도 그것을 집에 가져가 한 달만 소화하면 Covid-19도 이길만한 에너지를 낼 겁니다.
 
그것이 맛있었다고 하고 소화도 잘된다고 하면 한 단계 고급음식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음식을 냅니다. 그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식당의 특징은 맛을 보고 다음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배운 대로 그 음식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줘야 한다는 의무를 지웁니다. 그 의무를 지키기 어려운 사람은 나머지 더 맛있는 음식은 맛볼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 입맛이란 한이 없는 법입니다만, 내 음식을 먹다 보면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손님으로 왔다가 요리까지 배워 식구들을 위해 요리할 즈음이 되면 그의 시선은 메뉴의 뒷면 “신선(神仙)이 되는 일품요리”에 멈추게 되고 그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게 됩니다.
 
'소주천(小周天)'까지 맛을 보는 손님은 우리 집 손님의 1%도 못 됩니다. 그 음식은 삼생(三生)의 인연이 없으면 가까이할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잠이 많아서 손님이 많이 오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알아서들 주말에만 식당을 이용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물론, 음식에 설탕을 쓰지 않아서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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