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저절로 보인다 본문
깨달음이 있으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전(事前)이라 해서 약점들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以後)엔 그것들이 아주 실감나게 다가온다.
'공부는 초견(初見)을 하고 난 후부터'라는 말이 맞다. 눈이 감긴 상태에서는 아무리 애써 정진한다 할지라도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목(眼目)이 생겼다는 말은 보고 싶은 것들이 보인다는 뜻이며, 제대로 보고나면 예전의 답답함들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도 훤히 보인다.
대개 일견(一見)을 하고 나서는 그 고요함과 편안함에 안주하여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인사들이 적지않지만 그것 역시 무지(無知)의 소치다.
그 후 더 큰 공부 기회를 찾아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소 밝아졌다 할지라도 에고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탁마(갈고 다듬는다)한다'고 한다. 제대로 탁마(琢磨)를 하지 않거나 게을리하면 오히려 그것이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눈이 덜 열린 사람들이 자기에게 속아 그것을 신앙(信仰)이란 말로 사탕발림한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이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해 듣다보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기가 너무 쉽다.
깨달음을 얻은 이가 탁마를 게을리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은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밝음을 얻은 것으로 판단되는 이가 쓴 책을 정신차려 읽거나 직접 그들의 음성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점수를 매겨야 한다.
지금 우리는 깨달음 얻기에 너무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두가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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