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2378)
谷神不死
사람들이 돈을 벌고 높은 지위를 바라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지 사람에게 돈과 지위는 그리 중요치 않다. 무엇이 행복인가?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자기 확신이다.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내일은 영영 오지 않는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행복을 구하라.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라.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다.
자기를 고정화하지 말라.고정화하는 순간 진화(進化)는 정지한다. 다가와 주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라.존재(Existence)란 계속해서 변하게 되어있다. 언제든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라. 더 이상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유(有)가 없이 무(無)는 존재할 수 없다. 무는 유를 근거로 존재하며 절대무(絶對無)에서는 무를 알아차릴 근거조차 없기 때문이다. 무를 주장하기 위해서 유를 삭제할지라도 그곳엔 유의 흔적이 남아 유를 증명한다. 무아(無我)란 시타르타가 만든 다분히 조작적인 말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것이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한 고(苦)는 영원히 존재한다. 고와 낙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한 말이다. 아무리 無我를 주장한다 할지라고 언제나 '나(自我)는 존재한다. 無我 역시 내가 있어야 말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絶對無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살아있는 한 그 뒤엔 언제나 있는듯 없는듯 '내'가 있기 땨문이다.
선도 수련은 합리적이다. 수련의 순서를 몸, 숨, 맘으로 진행한다. 그것을 연정화기(鍊精化氣), 연기화신(鍊氣化神), 연신환허(鍊神還虛)라 한다. 수련을 시작하면 기(氣)를 느끼게 되는데, 그것을 득기(得氣)하였다고 하며,막혀있던 氣가 통하게 되는 것을 통기(通氣),그리고 얻어진 氣를 모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을 축기(蓄氣)라고 한다. 웬만한 민감성을 가진 사람은 기공(氣功) 수련 후 일주일이면 得氣를 한다.得氣를 하고 난 후에는 법을 따라 막힌 氣가 열리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通氣이다. 단전에 집중을 하면 氣가 단전에 모여들게 되는데, 그것이 1차 蓄氣이며,그것이 원만하게 진행될 때 소주천(小周天)을 이루게 되며심신(心身)이 건강해지기 시작하는데, 여기까지가 선도 수련의 1차 목표이다. 그 후 우리..
'유기(留氣)'란, 끌어들인 기운을 丹田에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숨을 멈추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호흡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유기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태극 호흡을 연습하면 좋다. (졸저 민정암의 氣 참조) 날숨이 제대로 되면 들숨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호흡은 한 벌이기 때문이다. 단전호흡이 무르익으면 날숨(내쉬는 숨) 때 반(半) 역호흡이 되면서, 단전 상단에 쳐진 그물이 진기(眞氣)를 붙잡아 가두게 된다. 그것이 태극 호흡이다. 용호결에서는 폐기(閉氣)라 하였지만, 머무를 유(留)자를 사용한 쓴 것에 유의해야 한다. 유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호흡과 동작이 콤비를 이루는 외단공(태극15세)을 배우면 효과적이다.
단전호흡을 하노라면,결국은 순수의식(純粹意識), 그리고 모이고 흩어지는 에너지만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단전 삼매'라 부른다. 거기엔 감정(感情)도, 본능(本能)도 숨어버리고, 의식과 에너지의 집합체만 남는데 우리는 그것을 '양신(陽神)'이라 부른다. 그것이 선도(仙道)가 추구하는 바다. 거기까지 이르려면, 우선 단전(丹田)을 알아야 하고, 축기(蓄氣)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축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심(一心)의 지난(持難)한 세월이 필요한데,그것을 단축해 주는 것이 '외단공(外丹功)'이다. 외단공이 기운을 끌어 모아주면 축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축기가 되지 않고는 소주천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소주천이 되지 않고는 양신을 할 수가 없다. 순서를 말한다면 단전, 축기, 소주천 그리고 양신이..
'나', 즉 자아(自我)라는 것이 실재하느냐는 질문에 싯다르타는 '무기(無記)'를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없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무기했다고 불경(佛經)은 전한다. (참고로, '무기'란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뜻이다) 좀 답답하겠지만, 자아란 것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중도적(中道的)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문(禪門)에서는 "있다"고 해도 30방(榜), "없다"고 해도 30방(榜)을 준다고 했다. 나는 에고(自我)의 실재(實在)를 말한다.그리고 주장하는 그것 자체가 '에고'이다. 과거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았을 수 있고, 미래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에고는 엄연(儼然)하다. 하지만 "에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글을 읽고 발끈하는 사..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절대로 필요하며, 그 핵심은 호흡에 있다.호흡에는 폐호흡과 피부호흡이 있으며, 그중 30%는 폐가, 나머지 호흡은 알게 모르게 피부가 담당한다. 코로 들어온 공기는 폐에서 그치고 말며, 단전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단전호흡은 별개의 호흡 시스템이다.단전호흡은 피부를 통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는데, 그것은 단전호흡을 해보면 알 수 있다.물론 단전호흡 역시 폐의 도움을 받지만, 폐가 하는 일은 단지 호흡의 촉진이다. 그러므로 조건이 바뀌어 단전이 완전한 일을 하게 되면 폐는 필요 없게 된다. 현재로선 이해가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태아는 코를 사용하여 숨 쉬지 않는다. 그들은 탯줄을 사용한다. 그래서 단전호흡의 완성을 태식(胎息)이라 하는 것이다.에너지체, 즉 양신(陽神)..
'알아챔'이란 특별하지 않다.심지어 파리, 모기도 알아채고 있기 때문이다. '알아챔'이란, 대상(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알아챔은 다르기 때문이다. '알아챔'은 당사자의 신앙과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기독교인과 불교인은 각자 알아챔이 다르다. '누가 알아채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알아채는 자를 알아채는 것에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나의 편협(偏狹)함을 먼저 알아채야 한다. 알아차림을 말하기 전에 말이다. 그러지 못하다면 당신의 알아차림은 아무 소용이 없다.부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몸은 '내'가 아니며, 생각도, 느낌도, '나'는 아니다.엄밀히 말한다면,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있는 신비한 '무엇'이 '나(자아)'이다.하지만 '그것만을 나'라고 해서는 안 된다.알아차림 역시 대상, 그리고 에너지(氣)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에너지의 작용이 없으면, 알아차림도, 대상도 없다.선도(仙道)에서 氣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선도의 핵심은 알아차림(神)과 에너지(氣)의 계합이며, 거기서 우리는 무너짐이 없는 영적 존재, 에너지체를 만난다.그것을 가리켜 양신(陽神)이라고 하며, 그것이 지구에 사는 우리의 마지막 공부이다.처음 공부는 당연히 단전호흡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