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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가난이란 '쪼들리는 삶'을 말한다.먹을 것이 충분치 않고, 추위를 이길 옷이 없어 춥게 사는 것을 말한다.하지만 요즘의 가난은 다르다.돈이 충분히 있으면서도 쪼들리며 산다.남들이 누리는 것을 못 누리고 살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적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고기반찬에, 철철이 새 옷을 갈아입지 못한다고... 5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들지 못한다고 그것이 가난은 아니다. 나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으며, 내 소유의 집도 절도 없이 살았지만,평생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비 피할 집이 있었고(내 소유는 아니라도), 배고플 때 밥이 있었고,겨울이 오면 늘 두터운 옷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행자라면 가난한 것이 유리하다.그래야 도(道) 닦기에 불편함이 없다. 열심히 살았어도 가난..

늘 즐겁게 사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아서 흥밋거리가 떠나지 않는다.주변에 사람들이 떠나가도, 남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흥밋거리가 지속되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그 흥밋거리가 자기 미래와 연결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돈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겁다.지위가 오르는 것도 기쁘다.하지만 이해가 늘어나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를 보고 사는 것보다 더 뿌듯한 것은 없다.자기만의 흥밋거리를 찾아라.돈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삶의 흥미가 사라진 인생은 비참하다.낙관적인 사람만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다.눈을 떠라. 흥밋거리가 거기에 있으니...

노화가 일어나면서 몸은 쇠퇴하고, 마음도 오락가락한다.그때 공(功)을 들여야 할 유일한 것은 단전(丹田)이다. 단전은 삼차원과 사차원에 걸쳐있는 넘사벽의 존재다. 단전은 쇠퇴하지도 않고, 오락가락하지도 않으며, 선계(仙界)를 향해 가고, 가고, 또 간다. 단전은 모든 경락(經絡)들과 연결되며, 장부(臟腑)들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든다.세상에 살고 있는 한 몸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주천이 물론 중요하지만, 소주천 역시 단전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소주천을 진행하면 구심력(求心力)이 생기며, 그것은 단전을 단계적으로 진화시킨다. 나이 들어 단전에 힘이 없으면 그저 늙은이일 뿐이다.하지만 단전이 활성화된 노인은 젊은이와 다름이 없다. 넉넉한 체력과 긍정적 의식은 단전으로부터 나온다. 나이 들어..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었을지라도 말이다.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 격려만 있다면 힘을 잃지 않는다. 최근 자살한 배우 이선균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검찰에 불려 갔지만 그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왜 자살했을까? 금전적 손해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언론에 의해 주위의 신뢰를 잃은 것이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부인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과거 노무현 씨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는 담담히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겠지만, 가장 넘기 힘든 산은 식구들 특히 부인이었을 것이다. 자살 전날 부인과 크게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그것이 자살로 ..

깨달음을 가르치는 선생(스님)에게 물었다. "깨달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는 "질문이 틀렸다"라는 심오(深奧)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지성(知性)을 가진 자는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 본능(本能)에만 의지하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싯다르타가 출가(出家)한 동기는 혼돈과 고통의 해결이었고, 그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친다. 어떤 이는 인생 전체를 깨달음에 밀어 넣는다. 그곳에 있을 때, 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세상과 며칠 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진정으로 여여(如如)하게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왜 그런가? 깨달음(?)만으론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해..

까뮈를 비롯 수많은 서양 철학자들은 삶이란 것은 원래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오늘날 생각 좀 한다는 사람도 그들의 말을 맥없이 따라 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실수이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삶을 의미(意味) 없다고 믿고 있는 한 그리될 것이다. 삶에서 의미를 적는 난은 백지상태로 비어있다. 그것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겠느냐는 모두 각자에게 달려 있다. 많은 사람이 그리 믿는다 해서 따라 믿지 말며, 오래 믿어온 것이라 해서, 권위자(?)의 말이라 해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말라.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발동시켜라. 냉철히 묻고, 숙고(熟考)해 보라. 조만간 삶의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나에게 삶은 충분한 意味가 있었다. 그것은 나의 50년 공부의 결론이다. 몇 가지 물어보자. 첫째, ..

긍정적인 마음은 나보다 남을 향해 있다. 남이 좋아야 나도 좋다는 생각, 그것이 긍정적인 마음의 시작이다. 생각은 말과 행동을 만들고, 그것은 결과로 이어진다. 낙관적이 되자. 어떤 마음 태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나도, 세상도 변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은 한없이 부정적이 되지만, 마음 하나 바꾸면 세상을 밝게 살 수 있다. 어려운 세상이다. 불안한 정치 경제에, 전쟁과 자연재해의 위협까지 덮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자. 그것이 밖으로 퍼져나가게 하자. 늘 마음과 몸 관리를 소홀히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극락에 살 수 있다.

과거(過去)는 손댈 수 없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이동하지 말라. 지금 여기에 머무는 순간, 과거는 힘을 잃어버린다. 과거에 있었던 오류(誤謬)로 괴로워하지 말라. 과거는 그저 과거, 지나간 흔적일 뿐이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모래 위에 새긴 글씨와 모래성들의 자취가 말끔히 사라지듯, 현재(現在)가 선명해지면 질수록 과거는 힘을 잃는다. 과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속에 녹아 있다. 현재 속에 머물라. 자아(自我)의 밝음이 빛을 발하는 순간, 과거는 스러진다. 불미스러운 모든 기억도 아름다움으로 새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