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화와 안정 (3)
谷神不死
가장 어려운 질문이 "왜 사느냐?"라고 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제일의 가치"에 대한 물음일 텐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기의 가치가 현 체제와 맞지 않아 그것을 말하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여 꺼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사람은 분명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해도 될 것이다. 가치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자기 가치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일수록 자기 의견은 내지 않고 그냥 비판 없이 남의 말을 따라 살게 마련이다. 깨어있는 삶이란 뚜렷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에 기초한 가치 기준이 서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삶...
어느 날 눈을 뜨고 꿈을 꾸었습니다. 커튼이 걷히며,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달도 별도 그 안에 있고, 하늘 땅도, 도로와 건물들도 모두 그 안에 있었고, 너도나도, 개도 소도, 그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놈이 있었습니다. 그놈은 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구분이 안 되는 이상한 놈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돈오(頓悟)를 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기분 좋으라고 그냥 하는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부턴 근심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같이 집착할 것 없는 아지랑이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요새도 눈 뜨고 꾸는 꿈은 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입니다.
석가의 첫 출가(出家) 동기는 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질병과 죽음을 본 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지위를 버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후 수많은 공부 여정(旅程)과 스승들을 통해 Samadhi(定)야말로 평화를 주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새 말로 명상(冥想)입니다. 그러나 최고봉(滅盡定)까지 힘들게 올랐지만, 일시적 평화를 줄 뿐, 지속적 안정(安定)을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그는 히말라야에 올라 수년간의 고행(苦行)으로 몸을 혹사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 였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샛별을 보고 깨쳤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혹자는 그동안 쌓은 수많은 공덕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단번에 꽃 피웠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도 물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