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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仙道와 佛道는 공부하는 법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은 비슷한 가르침이 많지만 말입니다. 이 몸이 氣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선도 공부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몸이 있고 氣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아는 놈이 있어야 공부가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가랑비 공부법입니다. 불도는 하나를 강조합니다. 하나가 되고 나면 아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말할 놈도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나기 공부법입니다. 선도는 단계적으로 공부를 지어가고, 불도는 눈 깜짝할 새 단번에 공부를 마치는 겁니다. 선도 공부법은 점법(漸法)입니다. 그러므로 성질 급한 사람은 선도를 닦을 수 없습니다. 이 몸을 닦아 이 몸이 氣라는 것을 우선 알아차리고(鍊精化氣), 두 번째, 氣를 닦아 그것이 神이었다는 것..

부처 가르침의 핵심이 '자기를 깨우치라는 것(性)'이라 한다면, 선도의 가르침은 '생명 깨우치는 것(命)'을 우선한다. 선도는 '생명'을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 깨우침을 '돈오(頓悟)'라 하여 순간적 일이라 한다면, 선도의 생명 깨우침은 '점수(漸修)', 즉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생명의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훑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선도는 그 요소를 정기신(精氣神)으로 규정하고 단계적 과정을 통해 그것을 깨우쳐가는데, 그것이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와 선도의 최종적 자리(空과 虛)가 거의 일치하는 데서 선불합종이란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으면 두 명의 수행자가 나온다.한 명은 신수(神秀), 다른 한 명은 혜능(慧能)이다. 깨달음에 대한 스승의 물음에 神秀는,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時時勤拂拭 (시시근불식)勿使惹塵埃 (물사야진애)[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 바탕일세. 때때로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하세]라 읊었고, 慧能은,菩提本無樹 (보리본무수) 明鏡亦非坮 (명경역비대)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何處惹塵埃 (하처야진애)[보리(菩提)에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끼일 티끌이 있겠는가]라고 벽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육조단경은 神秀의 이 게송(偈頌)을 점수선(漸修禪)이라고 근기(根器)가 낮다고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