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매일여 (3)
谷神不死
분별하고 있는 내가 있고, 분별하는 나를 지켜보는 놈이 있다. 분별은 번뇌(煩惱)를 부르지만, 지켜보는 놈은 순수함 자체로 있다. 오매일여(寤寐一如)란, 번뇌가 사라진 상태가 언제나 있음을 말한다. 동산(東山)이 물 위를 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남풍(南風)이 불고, 전각(殿閣) 밑이 서늘함을 알아차리는 놈에겐, 산란과 갈등이 없다. 자나 깨나 화두(話頭)가 들린다는 것은, 지켜보는 놈이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화두란 의미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놈을 알아채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뭣고?!
세상에 무상(無常)처럼 멋진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늘 새로움 속에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헌데, 그 無常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교리(敎理)가 있다. 어리석은 이에게는 그것이 허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無常에 대한 바른 이해의 결여가 만들어 낸다. 변화는 꼭 필요한 일이며, 그것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좋고, 궂은날은 궂은날대로 좋지 않은가? 쨍한 햇볕이 필요하기도 하고, 구름 낀 날이 좋은 경우도 있다. 삶에는 본래 의미(意味)가 없다.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意味는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므로, 일체는 본인 책임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사는 사람, 그에게 평온은 없다. 오매일여(寤寐一如) '나'는..
수행을 위해서는 일단 잡념의 통제가 필요하며, 수행자는 인연 따라 각기 자기 기국(器局)에 맞는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특정한 어휘(呪文과 챈팅)를 외운다거나, 일정한 동작(3000배, 수피댄스)을 반복, 그리고 호흡의 관(觀), 간화선(看話禪) 등 명상이라 불리는 여러 가지 것들이다. 그중 어떤 것도 순수의식(Samadhi)으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인간의 일체의 행위는 남김없이 깨달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수행의 의지가 있는 사람에 한하겠지만, 하늘의 섭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해인총림의 조실(祖室), 성철스님은 화두(話頭)가 여여(如如)한지에 중점을 두어, 오매일여(寤寐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를 주로 물었다고 한다. 법거량(法巨量)을 통해 가늠하는 전통을 버리고 말이다. 선도(仙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