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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양심에 걸려서 거짓말을 못 하겠다.", "나는 양심상 그를 죽일 수 없어.", "그것은 개인의 양심 문제야.", "그것이 그의 양심이라면, 나는 비양심이란 말인가?", "양심적으로 살아!" 이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양심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良心을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말과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라 정의합니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있군요. 맞습니다. 양심은 거의가 개인적입니다. 검사는 검사의 양심이 있고, 변호사는 변호사의 양심이 있습니다. 집단적 양심이라 할지라도, 개인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충효(忠孝) 사상이나 신앙(信仰), 그리고 도덕적 윤리가 양심의 기준이 될 ..

양심(良心)에 정해놓은 기준(基準)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의 못 할 사람이 꽤 있겠지만 양심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양심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파는 자에게는 이문을 많이 남기는 것이 양심이고, 사는 자는 한 푼이라도 싸게 사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할 것이다. 검사에게는 죄를 씌우는 검사만의 양심이 있고, 변호사는 무죄를 주장해주는 것을 양심이라 생각한다. 정치나 경제에 이르고 보면 양심을 거론하는 것조차 어색해진다. 재벌들은 소상공인의 이익을 뺏는 것에 가책을 안 느끼고, 정치가는 권력 유지만 생각하는 것을 양심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그 자리(본성)와 계합하기 전에는 양심을 말하지 말라. 시각이 다르면 깨달은 자에서도 허물은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수가 죄가 있었던가요? 그가 할 일을 다 하고 저세상으로 갔던가요? 왜 그는 요절(夭折)할 수밖에 없었던가요?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 등등 그의 신랄한 독설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라"라고 늘 말했습니다. 비록 옳다 할지라도 남이 싫어하는 말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죽대거나 비판하는 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는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다. (마태 7:2)"라고 말했습니다. 남이 나를 욕해도 그냥 "그렇구나!"하고 묵묵히 가도록 합시다. "그럴 만하니까 그랬겠지"라고 생각합시다. 눈에 거슬려도 내 일이 아니면 참견하지 말도록 합시다. 오직 그 자리(眞理)만을 ..

양심(良心)의 범위는 당사자 의식(意識)의 넓이만큼이다. 실수로 개미 한 마리를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이 있고, 타인의 불행을 보면 돕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떼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가책이 없이 양양한 사람이 있고 남이야 어찌 살던 자기 이익에만 급급하면서 자기처럼 양심적인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양심이란 무엇인가? 거주하고 있는 나라의 관습이나 법에 어긋나지 않거나 신앙하는 종교의 계율을 잘 따르기만 하면 일단은 양심적인가? 역사 이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良心을 덧씌워 대중을 사지(死地)로 몰고 갔던 비양심적인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양심이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인간의 가슴 속에는 범위를 가늠키 어려울 만큼의 양심이 자리 잡고 있다. 선지식(善知識)의..
최근 우리 사회에는 법원의 구속영장기각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선고로 왈가왈부가 있다. 결국 양심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여기서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양심(良心)은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양심은 스스로 자기 행위에 대한 평가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아울러 양(良)이란 말은 편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서 의무와 연관되어 있을 때는 그 부여자가 누구(?)이던 간에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편해지고 거부할 때는 불편해지는 것이다. 각자의 양심은 거의 모두 교육에 의해 형성되므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결코 불변하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결국 판사에게는 판사의 양심이, 검사에게는 검사의 양심이, 사제에게는 사제의 양심이, 전사(戰士)에게는 전사의 양심(승리)이 있으며, 기독교인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