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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사람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중도에 포기하거나 약속을 파기하는 일은 그쪽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다.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특전 대령의 ‘말 바꾸기’도 마찬가지다.하지만 그리하는 것은 잘못이다.인간관계에 흠집을 내고, 향후 그것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되기 십상이다.수행자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특히 수행에 게으르고 포기하는 것 등은 큰 실수이다.향후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어 큰 후회를 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세상 사람이 모두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해도, 나만은 나를 믿어줘야 한다.마음을 바꾸고 말을 바꿀 때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얕은 생각의 당장 이익보다 좀 더 멀리 바라보는 숙고(熟考)가 필요하다.

나이를 충분히 먹어 세상에 와서 할 만한 일을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하거나,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세상서 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즉시 세상에서 발을 빼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습관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그렇다고 유별나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적어도 하루의 51%를 깨달음을 생각하고, 소주천 수련을 지속한다면 세상서 발을 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한 발 떨어져 볼 수 있어야 한다.세상에 휩쓸리면서 가끔 수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아직도 이 세상에서 과연 더 얻을 것이 있는가, 늘 자기에게 물어봐야 한다.하루 51%만이라도 깨어있도록 자기관조에 힘써라.내일은 오지 않는다.오직 오늘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100명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보다는, 단 한 사람의 인정(認定)이 중요하다. 예술인의 경우, 타인의 인정은 그리 중요치 않다.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쓰레기일 뿐이다.도예가(陶藝家)가 잘 구워진 도자기를 깨버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수행자에게 타인의 인정은 기쁨을 주지 못한다. 자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기다.스스로의 인정이 없는 한, 멈추지 않는다. 수행자는 외로움을 즐긴다.번잡스러움은 귀찮을 뿐이다. 똑똑한 아파트 한 채라는 말이 있다. 수행자는 단 한 명의 제자를 기다리느라 평생을 보낸다.제자 한 명 얻지 못하고 지구를 떠난 스승이 수없이 많다.

귀신 중엔 인간에게 복(福)과 화(禍)를 주는 능력이 있는 귀신도 있습니다. 그들은 재물, 권력, 명예로 인간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래서 재벌이나 대통령도 그들 앞에 엎드립니다. 하지만 색(色)과 공(空)이 하나라는 것을 깨우친 수행자는 그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재물을 뺏어가고, 일을 그릇되게 만들고, 사람을 흩을 수는 있어도, 바른 수행자의 생명은 가져가지 못합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재물, 권력, 명예를 초개(草芥)와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런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귀신들도 무서워하는 그런 수행자 말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스승을 모시는 사람은 자기주장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초심자에게 지도자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즐기라고만 한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진 수행자는 다르게 대한다. 자기주장을 고집한다는 것은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술 담배를 자제하라거나 특별한 공법(功法)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선도(仙道)를 즐기는 것, 약간의 건강 호조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스승의 지시를 흘려듣거나 거부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 때는 최소한 견성(見性)을 이루고, 소주천(小周天) 1단계를 완성하고 난 이후부터여야 한다. 그전에 스승의 말을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된다. 스승의 초점은 언제나 제자의 진보에 맞추어져 ..

성경(the Holy Bible)에 '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일반 생활인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진정한 수행자라면 다르다. 재물에 신경을 쓰는 수행자는 추해진다. 경제를 내려 놓고 살지 못한다면 영적 성장은 어렵다. 과거의 수행자는 구걸로 연명했다. 비구란 거지란 뜻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필요한 것은 어디서든 충족된다. 요즘에 한국에 구걸하는수행자는 없다. 수행자의 기본 생활도 신청만 하면 정부가 보장한다. 수행자라면 관심사가 달라야 한다. 세상 모두를 얻었어도 미래를 잃었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사람은 자기에게만 사랑을 쏟아 주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도록 되어 있다. 이름난 바람둥이의 특징은 여러 연인과 상대하면서도 그의 모든 사랑을 자기만 받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전설처럼만 전해진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것을 동시에 밀도 있게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생각을 빨리 이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수행자(修行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에너지(氣)가 분산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제자는 마땅히 성경신(誠敬信)을 배양해야 한다. 정성과 존경, 그리고 믿음 말이다. 그것에는 원하는 것을 끌어오는 힘이 있다. 심은 만큼만 거둔다. 세상은 수수관계(授受關係), 즉 'Give a..

모처럼 만나서, "아침 드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과거엔 그랬지만 쌀이 없어 아침을 못 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일 없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소위 명상(冥想)을 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말이다. 그런 질문에 나는 "매일 매일이 별일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하루하루가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오행(五行)이 골고루 들어 상생(相生)을 이루는 사주(四柱)를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생을 나는 별로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인생은 엎치락뒤치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만에 지인(知人)을 만나면 "혹시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셨나요?"라고 묻는다. 거의가 "아니요, 맨날 똑같지요?"라는 답을 듣지만 말이다. 좋은 부모 만나, 순조롭게 ..

수행자(특히 인도 수행자)가 苦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업(Karma)을 털어내기 위해 그리한다. 싯다르타도 처음엔 그들을 따라 산에 올라 오랜 시간 고행(苦行)을 해 뼈와 가죽만 남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그것이 고(suffering)를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苦를 소멸시키는 원리를 깨달았다. 그의 알아낸 것은 내가 없다면 苦가 있을 수 없다는 원인무효법, 즉 무아(無我)이다. 그것은 불교의 기둥 교리가 되었다. 그 말대로라면 모든 것은 허망하다. 우리는 어떤 노력(수행)도 할 필요가 없다. 산다는 것이 코미디이다. 그들의 말은 다분히 논리적이어서 반박에 쉽지 않다.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논리적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없는가? 그것은 그치지 않을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