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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귀신 중엔 인간에게 복(福)과 화(禍)를 주는 능력이 있는 귀신도 있습니다. 그들은 재물, 권력, 명예로 인간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래서 재벌이나 대통령도 그들 앞에 엎드립니다. 하지만 색(色)과 공(空)이 하나라는 것을 깨우친 수행자는 그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재물을 뺏어가고, 일을 그릇되게 만들고, 사람을 흩을 수는 있어도, 바른 수행자의 생명은 가져가지 못합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재물, 권력, 명예를 초개(草芥)와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런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귀신들도 무서워하는 그런 수행자 말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스승을 모시는 사람은 자기주장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초심자에게 지도자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즐기라고만 한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진 수행자는 다르게 대한다. 자기주장을 고집한다는 것은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술 담배를 자제하라거나 특별한 공법(功法)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선도(仙道)를 즐기는 것, 약간의 건강 호조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스승의 지시를 흘려듣거나 거부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 때는 최소한 견성(見性)을 이루고, 소주천(小周天) 1단계를 완성하고 난 이후부터여야 한다. 그전에 스승의 말을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된다. 스승의 초점은 언제나 제자의 진보에 맞추어져 ..
성경(the Holy Bible)에 '재물과 하느님을 병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일반 생활인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수행자라면 다르다. 재물에 신경을 쓰는 수행자는 추해진다. 경제를 놓고 살지 못한다면 영적 성장은 어렵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필요한 것은 어디서든 충족된다고 믿으라. 그것이 수행자의 태도다. 수행자라면 관심사가 달라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우선순위가 있다. 세상 모두를 얻었어도 자기를 잃었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랴! 견성(깨달음)과 소주천(小周天)에 관심을 가져라. 그것에 우선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에게만 사랑을 쏟아 주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도록 되어 있다. 이름난 바람둥이의 특징은 여러 연인과 상대하면서도 그의 모든 사랑을 자기만 받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전설처럼만 전해진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것을 동시에 밀도 있게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생각을 빨리 이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수행자(修行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에너지(氣)가 분산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제자는 마땅히 성경신(誠敬信)을 배양해야 한다. 정성과 존경, 그리고 믿음 말이다. 그것에는 원하는 것을 끌어오는 힘이 있다. 심은 만큼만 거둔다. 세상은 수수관계(授受關係), 즉 'Give a..
모처럼 만나서, "아침 드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과거엔 그랬지만 쌀이 없어 아침을 못 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일 없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소위 명상(冥想)을 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말이다. 그런 질문에 나는 "매일 매일이 별일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하루하루가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오행(五行)이 골고루 들어 상생(相生)을 이루는 사주(四柱)를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생을 나는 별로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인생은 엎치락뒤치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만에 지인(知人)을 만나면 "혹시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셨나요?"라고 묻는다. 거의가 "아니요, 맨날 똑같지요?"라는 답을 듣지만 말이다. 좋은 부모 만나, 순조롭게 ..
수행자(특히 인도 수행자)가 苦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업(Karma)을 털어내기 위해 그리한다. 싯다르타도 처음엔 그들을 따라 산에 올라 오랜 시간 고행(苦行)을 해 뼈와 가죽만 남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그것이 고(suffering)를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苦를 소멸시키는 원리를 깨달았다. 그의 알아낸 것은 내가 없다면 苦가 있을 수 없다는 원인무효법, 즉 무아(無我)이다. 그것은 불교의 기둥 교리가 되었다. 그 말대로라면 모든 것은 허망하다. 우리는 어떤 노력(수행)도 할 필요가 없다. 산다는 것이 코미디이다. 그들의 말은 다분히 논리적이어서 반박에 쉽지 않다.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논리적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없는가? 그것은 그치지 않을 토..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보는 놈이 있다는 것이고, 들리는 것이 있다는 것은 듣는 놈이 있다는 것이고, 느낌이 있다는 것은 느끼는 놈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낌에 관심을 두고 살지만, 수행자는 보는 놈, 듣는 놈, 느끼는 놈에 관심을 두고 산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낌은 쉼 없이 변하지만, 보는 놈, 듣는 놈, 느끼는 놈은 항상 그대로다.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끄달리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평생 속지 않고 살았던 사람은 없으며, 또한 누군가를 속여보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먼저 자기부터 완벽하게 속이지 읺으면 안 된다. 그쯤 되면 거의 예술(藝術) 수준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속여 넘겼다 할지라도 속였다는 기억이 뇌 속에 남아 있다면 장사 잘못한 것이다. 속여서 얻은 이득보다 그 후의 가책(呵責)으로 인한 손해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성(理性)이란 걸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정말 잘 속이려면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탄로 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낙원이나 천당, 혹은 극락, 열반(涅槃), 심판이나 개벽 같은 것이라면 매우 좋다. 죽은 사람에겐 속았다는 것조차 없기 때문이다. 속인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속이는 사람만큼이나 속는 사람에게도 허물이 작지 않다. ..
중병(重病)으로 회생(回生)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 곡기(穀氣)를 끊어 생(生)을 마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진짜 '알아채기' 공부가 됩니다. 방해받지 않고 몸과 마음, 호흡의 변화를 확연히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곡기를 끊으면 온몸의 통증들이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후천(後天)에서 얻은 기운이 선천(先天)의 기운으로 바뀝니다. 그때부터는 자성(自性) 자리가 더욱 빛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세상을 버리는데 보통 100일 정도가 걸립니다. 천천히 삶의 흔적들을 지우고 선계(仙界)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때 거리낌이 없는 천국(극락)이 체험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마지막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사람 둘과 기자 하나가 걸어간다”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맞다. 기자(記者)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매의 눈에 표범의 발톱을 가진 괴물이다. 그의 눈에는 돋보기와 졸보기 안경이 함께 달려 있고, 한번 물면 이가 다 빠져도 놓지 않는다. 물론 대강 권력자들과 결탁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기자도 적지 않지만.... 검사(檢事)에게 한 번 밉보이면 사돈에 팔촌까지 탈탈 털린다지만, 검사의 옷을 벗기는 것은 기자다. 그는 총보다 힘이 센 펜을 가지고 있다. 수행자는 기자와 같아야 한다. 그처럼 관찰력과 직감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알아채지 못하면 수행자가 아니다. 단번에 깨달을 것을 몇십 년을 끙끙대고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자질(資質) 문제다. 기자라면 당장 책상 비우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