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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불교의 중심은 삼법인(三法印)이며,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입니다. 그리고 과거 석가모니가 그랬듯, 우리의 소망도 '괴로움(苦)의 해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무아가 맞고, 그것이 깨달음의 요체라면, 고(Suffering)는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없는데, 누가 苦를 느끼며, 또 누가 고를 해결하겠습니까? 三法印이 아니라 二法印이었으면 좋았을 법합니다. 석가모니는 브라만교(Brahmanism)의 Atman에 너무 집착했는지도 모릅니다.
달과 손가락
2023. 3. 16. 00:19

내가 없는데, '내가 없다'는 말은 누가 하는가? 정말로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내가 없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없는 놈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입으로는 내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리다툼하고, 계율 어겨가며 재산 모으고, 축첩하고 노름에 골프치고 다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말이다. 그것도 별 직책을 가지지 않은 승려가 그리한다면 모를까, 최고위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면 그것을 일부가 저지르는 개인적 불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있으니 맛있는 것도 찾고, 남의 위에 서려 하고, 여자 구해 자식까지 보려고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있어야 나를 깨닫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없는 '나'가 왜 고(苦)에서 벗어나야 하고 없는 '나'가 왜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실로 황당한 일..
달과 손가락
2023. 3. 10.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