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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을 가르치는 선생(스님)에게 물었다. "깨달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는 "질문이 틀렸다"라는 심오(深奧)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지성(知性)을 가진 자는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 본능(本能)에만 의지하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싯다르타가 출가(出家)한 동기는 혼돈과 고통의 해결이었고, 그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친다. 어떤 이는 인생 전체를 깨달음에 밀어 넣는다. 그곳에 있을 때, 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세상과 며칠 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진정으로 여여(如如)하게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왜 그런가? 깨달음(?)만으론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해..
"매일 적당한 운동과 건강식을 하고, 숙면을 취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라. 그리하면 건강 장수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따르는 사람은 극히 적다. 운동하기 싫고, 건강식은 입에서 거부하며, 쓸데없이 늦게 자고, 별것도 아닌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남들처럼 살다가 죽을 것이다. 낙관적(樂觀的)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낙관주의는 타고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행자(修行者)라고 해서 모두 깨달음을 얻고 소주천(小周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라고 스스로에 최면(催眠)을 걸고 사는 한, 그에게는 괴로움만 이어질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없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고까지 결심하고 사는 한, 인생이 ..
긍정적인 마음은 나보다 남을 향해 있다. 남이 좋아야 나도 좋다는 생각, 그것이 긍정적인 마음의 시작이다. 생각은 말과 행동을 만들고, 그것은 결과로 이어진다. 낙관적이 되자. 어떤 마음 태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나도, 세상도 변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은 한없이 부정적이 되지만, 마음 하나 바꾸면 세상을 밝게 살 수 있다. 어려운 세상이다. 불안한 정치 경제에, 전쟁과 자연재해의 위협까지 덮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자. 그것이 밖으로 퍼져나가게 하자. 늘 마음과 몸 관리를 소홀히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극락에 살 수 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서양철학자 포함)은 대부분 인생을 고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고(苦)와 낙(樂)이 하나라는 것을 모른다. 그들에게 낙은 거의 사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낙(樂)이다. 우리가 더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들이 그리도 인생을 비관적(悲觀的)으로 보는 이유는 아직 실제적 본성(本性)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와 함께하는 순간, 苦도 樂도 없다. 그것들은 일어나는 당신의 생각이 그리 규정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苦가 일어나는 이유는 기운(氣運)의 흐름과 관계가 깊다. 기운의 운행만 원활하면 늙었어도 하루하루가 여유롭다. 작은 꽃 한 송이,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도 그를 즐겁게 한다.
사람은 참 이상도 하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어도 한쪽은 낙관적(樂觀的)으로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비관적(悲觀的)으로 자기를 괴롭히며 산다. 한쪽은 인생의 밝은 면을 비추며 다소 괴로운 일이 있어도 무상(無常)의 이치에 따라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인생은 '결국 고통뿐(一切皆苦)'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괴로움을 낙(樂) 삼으며 살아간다. 한쪽은 무아(無我)를 모두가 하나(Oneness)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늘 감사하며 베풀어 가며 살지만, 다른 한쪽은 일체가 허망(虛妄)하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가며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 신앙(信仰)하며 산다. 한쪽은 살아있는 동안 험한 형편이나 다소 병약한 체질을 바꾸며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다른 한쪽은 삶에 대한 염세적(厭世的) 태도로 죽지 못해서 ..
명상(冥想)이란 생각을 끄는 행위입니다. 생각을 멈춰야 의식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편해지기 위한 목적만은 아닙니다. 신앙단체의 명상은 그들 식대로, 생각을 그들 좋은대로(비관적)으로 조정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사업(영업)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느 쪽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특권입니다. 변속기 레버를 중립에 두어야 자동차 방향을 전진에서 후진으로 바꿀 수 있듯이 우리 생각을 바꾸려면 생각을 멈춰줘야 합니다. 자기를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비관적이 되게할지는 자기의 선택입니다. 자동차의 방향을 운전사 마음대로 바꾸듯이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이고, 마음의 기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