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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장사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매출이 늘어나는 재미에 산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직위가 올라가는 희망에 산다.학자는 지식이 쌓여가는 것을 큰 보람으로 산다.그것들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신앙인은 무엇이 위안일까?죽어서 천당 혹은 극락에 가는 거?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거?하지만 그런 것들은 현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선도인(仙道人)은 매일 매일 기운이 늘어나고,단전(丹田)이 점점 실(實)해짐을 실감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이처럼 활짝 깬 의식에 의식(神)과 기운(氣)이 계합(契合)을 이룬다면 나중에 몸이 버리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존재가 될까? 존재가 흩어지지 않는 대자유(大自由)의 존재가 될 것이다.神과 氣는 불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었던 돈은 돈이 아니다.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비록 빌린 것이라 해도 말이다. 경영은 이문을 남겨야 한다.그리고 하루빨리 부채 상환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나올 때 기본적인 에너지(氣)를 빌려 세상에 나온다.필히 애써 에너지를 불려서, 빌린 만큼을 만들어 갚아야 한다. 그리하면 빌렸던 기(氣)도 모두 내 것이 된다.갚을 날짜는 지구를 떠날 때까지다. 돈이 없이 행세할 수 없듯이,氣가 없이는 내 삶은 행세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가진 기운(氣運), 딱 그만큼만 나는 존재한다.내가 가진 氣가 사라지는 순간, 나도 사라진다.

돈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몰라도 된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돈이 모이고, 수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지 알면 된다.권력도 마찬가지다 .허세와 집착을 조절한다면, 몰락하지 않고 추앙을 받을 것이다.기운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된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기운의 주인이 되는지 알면 된다.그리하면 기운이 부족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깨달은 자는 생명을 안다.그러므로 즐겁게 사는 법도 안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생명(기운)을 기르는지를 안다.어찌하면 영세토록 생명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지를 안다.

단전(丹田)을 깨워야 합니다.그래야 4차원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장롱 속에 금덩이가 있어도, 그것을 잊고 지낸다면 구차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단전은 우리가 가진 보물입니다.그것을 모르면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단전을 알고, 그것을 자기를 위해 써야 합니다.조금만 관심을 두고 기운을 느끼면, 단전도 깨어나게 됩니다.기운과 단전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단전을 알아채면 단전은 기운의 창고임을 알게 됩니다.단전을 모르면 기운이 흩어집니다.갈무리할 창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을 나라고 믿고 있는 한, 평화는 없습니다.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해도, 안정은 없습니다.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이 몸과 이 마음은 나의 전부가 아닙니다.몸(精)과 함께하는 에너지(氣)를 알아채야 하고, 그것을 닦아 그 중심(神)을 찾아내야 합니다.그리고 氣와 神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그것을 연기화신(鍊氣化神)이라 합니다.거기에 평화와 안정이 있습니다.

힘을 빼고 고요히 움직여라. 기운(氣運)이 일어날 것이다. 가늘고 길게 숨을 쉬어라. 기운이 모일 것이다. 의식을 모아 기운을 하복(下腹)의 중앙 단전으로 보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단전(丹田)이 열리고 말 것이다. 그것이 단전호흡이다. 기운을 모으고 의식과 호흡을 계합해 삶고 찌라. 그것이 양신(養神)이다.

말은 무성하지만.. 자기를 아는 사람은 너무 희귀(稀貴)하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몸이 부실하거나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선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운(氣運)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운이 없어도 그것은 사람이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자기 마음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은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사령관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기운(氣運)도 '나'는 아니다. 그것들은 무상(無常)하기 때문이다. 그것들 뒤에 그것들을 지켜보는 신령(神靈)한 물건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챙기는 것을 수행이라 하고, 늘 그것과 함께하는 자를 가리켜 '깨달은 자' 혹은 '부처'라 한다. 그리고 기운까지 자유자재한 사람을 신선(神仙)이라 부..

우리는 에너지 속에서 삽니다. 에너지는 생긴 적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지만, 모든 일을 합니다. 그것은 빛을 주고, 열(熱)을 주고,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사랑도 안 되고, 심지어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선(善)하지도 악(惡)하지도 않지만, 모든 작용의 주체(主體)가 되고 깨달음으로도 인도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는 이유는 그것이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를 우리말로 '기(氣)'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왜 자도 자도 피곤이 안 풀릴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삶이 리드미컬(Rhythmical)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피로를 풀지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것을 머리에 두고 살기 때문이다. 선도(仙道)의 가르침을 간단히 말하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라"이다. 그것이 자연의 삶이요, 리드미컬한 삶이다. 배고픈데 먹지 않고, 배부르면서도 먹으며, 졸린데 자지 않고, 졸리지 않은데도 자려고 한다. 게다가 해결할 수 없는 것, 포기해도 좋은 것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당연히 피곤을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운용(氣運用)을 통해 배는 따뜻하게, 머리는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 나는 하루에 ..

요리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출까지 써 가며 몇십 년 요리 연구를 하는 중에 얕은맛은 없어도 기운(氣運)이 돌아서 웬만한 병은 저절로 사라지며, 안목(眼目)도 열리는 신기한 음식을 개발해 냈답니다. 혼자 먹기 아까워서 사람들을 초대하여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대접했지만, 반응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리 시원치 않았다지요. 사람들은 달고, 맵고, 기름이 흐르는, 우선 입에 맞는 음식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답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초대하기를 중지하고 음식을 조금씩만 만들어 가치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나누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애써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맛보기 음식을 한 접시씩 내준답니다. 그는 늘 편안하답니다. 음식 장사를 할 것은 아니니 손님이 적어도 행복하답니다. 그의 꿈은 우리가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