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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불교에는 '삼특상(三特相)'이란 것이 있으며, 교리(敎理)의 중심입니다.그것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입니다.우리는 그중 하나, '무상(항상 하지 않음)'만 이해하면 됩니다.삶의 모두가 고통(一切皆苦)이라지만, 그것 역시 무상을 이길 순 없습니다.그리고 '나 없음(무아)'은 다툼의 여지가 많으니 무시해도 무방합니다.무상은 진리랄 것도 없고, 공부(수행)할 필요도 없습니다.조금의 관찰력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가 가능하니 말입니다.문제는 무상이란 말이 거의 부정적으로만 쓰인다는 것입니다.'인생무상'이라느니 하고 말입니다.하지만 무상은 긍정적(희망적)으로 쓰여야 합니다.세상에 좋게 변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는 고통은 세상에 없습니다.똑똑해져야 합니다.모르면 속고, 손해 봅니다.

“사람 둘과 기자 하나가 걸어간다”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맞다. 기자(記者)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매의 눈에 표범의 발톱을 가진 괴물이다. 그의 눈에는 돋보기와 졸보기 안경이 함께 달려 있고, 한번 물면 이가 다 빠져도 놓지 않는다. 물론 대강 권력자들과 결탁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기자도 적지 않지만.... 검사(檢事)에게 한 번 밉보이면 사돈에 팔촌까지 탈탈 털린다지만, 검사의 옷을 벗기는 것은 기자다. 그는 총보다 힘이 센 펜을 가지고 있다. 수행자는 기자와 같아야 한다. 그처럼 관찰력과 직감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알아채지 못하면 수행자가 아니다. 단번에 깨달을 것을 몇십 년을 끙끙대고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자질(資質) 문제다. 기자라면 당장 책상 비우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