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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치매에 제일 좋은 치료법(약)은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만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뇌에 충분한 산소를 보내고, 뇌를 젊게 만드는 호르몬을 생성한다. 젊은이에게는 그들의 운동이 있고, 시니어(seniors)에게는 시니어의 운동이 있다. 노인에게는 기록경기나 승부를 다투는 운동이 적합하지 않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부상으로 오래 운동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극권을 권한다. 움직이는 명상(禪)이라 불리며, 노약자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 하지만 젊은이에게도 쉬운 운동은 아니다. 일반 운동과 달리 에너지를 살려내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살려내는 특징이 있으며, 서양에서도 유행한다. 세계선도연맹에 오면 누구에게나 개인지도를 해 준다.

세상은 무심(無心), 즉 순수한 마음이 만듭니다. 순수한 마음이란, 생각(想)이 없는 '심심한 마음'입니다. 하루에 단 5분 만이라도, 그 심심한 마음을 지켜 보십시오. 그 심심한 마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당신의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습관과 행동을 바꿉니다. 마침내는 운명(運命)까지 바꾸어 줍니다. 그 심심한 마음자리에 당신이 원하는 당신의 모습을 그리십시오. 얼마 안 가서 당신이 원하던 것이 눈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본성(本性)의 자리, 성령(聖靈)이 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性功)의 핵심은 "고요함"이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보는 것이다. '선(禪)'이란 생각을 내리고(單) 보는(示) 것이다. 그래서 '어두운(冥) 생각(想)'이라 하는 것이다. 고요함에 이르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육체이완(body relaxation), 다른 하나는 정신이완(mental relaxation)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몸이 이완되면 마음도 편해진다. 주시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경직(硬直)된 몸으로는 고요함에 이를 수 없다. 반면에 고요함에 이르면 모든 경직이 풀린다. 몸이 고요해지면 마음도 고요해진다.

꼭 해야 할 일은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라보며 혐오하지 않는다. 과거사에 아쉬움이 없으며, 미래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돈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산다. 늘 자성(自性)을 지키며, 관심사는 돌아갈 세상(仙界)에 맞춰져 있다. 늘 깨어서 고요함을 잃지 않고 산다. 일이 마무리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그것이 인선(人仙)의 삶이다.

물이 흐리거나 파도가 치고 있는 동안은 우리는 물 밑의 풍경을 볼 수 없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잡생각에 시달리거나, 이런저런 것들(사상과 信仰)에 잡혀있다면, 자기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을 알 수가 없다. 몸과 마음, 그 둘은 나(The Self)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둘을 통하지 않고 자기를 찾을 수는 없다. 깨달음을 원한다면 자기를 고요하게(入靜) 만들어야 한다. 그보다 더 확실히 몸과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과학이 증명하는 바이며, 오랜 세월 그것에 자기를 바친 수행자(修行者)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것을 몰입(沒入), 입정(入靜), Samadhi(禪定)라고 말하며, 그것은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적인 바램이다. 관건은 어떻게 자기를 고요하게 만드느..
깨우침을 원한다는 사람들은 고요한 자리를 찾는다. 그들은 있던 곳을 떠나 어디론가 가려한다. 그곳이 히말라야든, 성스럽다는 장소든, 산속이나 바닷가 등 사람들 발길이 드문 곳을 선호한다. 과연 고요한 자리가 있는가? 산 속이, 바닷가, 교회 사찰이 진정 고요하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지, 그곳 역시 시끄럽긴 일반이며, 그곳에서도 피비린내나는 약육강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요한 곳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갈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 이곳'처럼 고요한 곳은 없다. 잠시 생각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 젖어드는 이 마음자리보다 더 고요한 곳은 없다. 그곳이 장바닥이든, 작업현장이든, 극장이든, 전쟁터든 상관이 없다. 이 자리만큼 고요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고요함이 오면 모든 불만이 사라진다. 알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