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無我 (3)
谷神不死

무아(無我)란 말을 하면 고상해 보이는가 보다.뭘 좀 안다는 사람은 이구동성(異口同聲) '무아'를 말하니 말이다. 자기(自己)가 없으면 '무아'란 말조차 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상 무아란 말의 시작은 우리가 무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싯다르타의 시작은 '고통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였고,고집멸도(苦集滅道)니 뭐니 그런 복잡한 말보다 무아(無我)만 설명되면 고(苦)는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불교는 내가 보기에 매우 간단하다.그의 첫 번째 교설(敎說),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나머지 말들은 사족(蛇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無常만 완전히 이해하면 삶의 어려움은 없다.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참으면 되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는 기다림은 오히려 즐거..

'나'와 '나의 것'을 구별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런 사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유물은 나에게 편리를 주지만,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그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뀔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그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뿐입니다. 이 몸은 내가 아닙니다.이 마음도 나는 아닙니다. 늘 바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없다(無我)'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들이 그리 말하는 이유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들 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선도(仙道)에서는 '기(氣)'와 '신(神)'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변의 법칙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氣에 神에 관심을 가져보십시오.불안이 없는 넉넉한 인생을 살게..

"나"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은 수행자가 제일 먼저 가려내야 할 화두(話頭)다. 모든 것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나'이기 때문이다. 불문(佛門)에서 ‘나’라는 것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열심히 '내가 없다(無我)'는 것을 말하고, 심지어는 최면을 걸어서까지 자기가 없다는 것을 마음에 심으라고 역설한다. 그렇게 하는 근거로는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을 '나'로 규정하고 오온 중 어떤 것에도 주체(主體)가 없다는 것을 들이댄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일견(一見) 일리(一利)가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과연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오온이 모두인가에 다다른다면 의문이 그치질 않는다. 선도(仙道)에서의 사람 구성요소에는 오온(五蘊) 외에 기(氣)와 신(神)이 있으며, Bible에도 코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