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왜 무아여야 하는가? 본문
무아(無我)란 말을 하면 고상해 보이는가 보다.
뭘 좀 안다는 사람은 이구동성(異口同聲) '무아'를 말하니 말이다.
자기(自己)가 없으면 '무아'란 말조차 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상 무아란 말의 시작은 우리가 무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싯다르타의 시작은 '고통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였고,
고집멸도(苦集滅道)니 뭐니 그런 복잡한 말보다 무아(無我)만 설명되면
고(苦)는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불교는 내가 보기에 매우 간단하다.
그의 첫 번째 교설(敎說),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나머지 말들은 사족(蛇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無常만 완전히 이해하면 삶의 어려움은 없다.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참으면 되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는 기다림은 오히려 즐거움이다.
게다가 정말 無我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 앞에 無常이건 苦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상, 고, 무아를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을 생각하고 느끼는 '나'라는 놈이 엄연(儼然)하기 때문이다.
728x90
반응형
'달과 손가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0) | 2025.03.01 |
---|---|
생각이 나의 미래 (1) | 2025.02.26 |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 (0) | 2025.02.15 |
인생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중한 일 (1) | 2025.02.13 |
명상의 힘 (0) | 202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