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Taiji Yoga/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20)
谷神不死

신선(人仙)이란, 불도(佛道)에서 말하는 보살(菩薩)과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선도(仙道)는 신앙(信仰)이 아니므로, 꼭 지켜야 할 계율(戒律)은 큰 의미가 없다. 보살이란 깨달은 자(Bodhi)와 중생(Sattva)의 두 가지 캐릭터가 합쳐진 것으로,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 후에 열반(Nirvana)에 들 것을 결심한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보살과 신선은 일맥상통한다. 보살에게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있으나, 신선에게는 그 결이 다른 자연무위(自然無爲)가 있다. 육바라밀의 첫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은 다분히 억압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신선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신선에게는 '억지로'가 없으며, 남이 눈치를 보아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법은 없다. 누가..

TV가 고장이 나서 AS를 불렀다. 기사가 와서 살펴보고는 코드가 빠졌다고 다시 연결하고는 가면서 말했다. “다음서부터는 코드를 한번 뽑았다가 다시 연결하기만 하세요. 쉽게 고장 나는 물건은 아니니 말입니다.” 아침에 나가보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보닛(bonnet)를 열었다 닫았다. 동력선을 분리했다 연결했다 했어도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배터리 방전이었다. 어떤 암 환자는 그냥 있었으면 5년은 살 것을, 항암 치료 5개월 만에 죽었다. 가만히 두어도 별문제가 없는 일이 있고, 애를 써서 손질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무위법(無爲法)과 유위법(有爲法)이라 한다. 깨달음을 위해선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멈추고(止), 보기만 하면(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그곳과는 인연을 완전히 끊고자 하는 사람과 퇴직 이후에도 계속해서 회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과의 회사에 대한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깨달음을 얻고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세상에 남아 고생하는 중생(衆生)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가리켜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보살을 부처의 밑에 두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상 보살이 부처보다 윗길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부처의 생각을 한 단계 뛰어넘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도(仙道)를 닦는 사람들이 말하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 어떻게 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반문한다. "밑져야 본전 아니냐", "인간의 마음속에..

깨달음처럼 쉬운 건 없지만, 그것을 위해 온 인생을 허비한다. 어떤 사람들은 산 깊은 곳을 찾아 떠나고, 어떤 이는 타국의 오지(奧地)를 뒤진다. 그것은 지금 바로 여기 있는데... 그것은 마음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생각에 취해 꿈속을 헤맨다. 차창 밖의 풍경은 계속 지나가도 창문은 그대로 있듯이, 기쁜 일, 슬픈 일이 지나가도 그 자리는 언제나 그대로 변함이 없다. 그 자리를 여여(如如)하다 하고, 본래면목, 진여(眞如) 자리라 하는 것이다. 이리 쉽게 이야기해줘도 모른다면, 과거 조사(祖師)들처럼 소리 지르고 몽둥이를 날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를 깨우치고 나면 정말 소풍 같은 세상을 살다 갈 텐데....

우리는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에 나만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고 말했다고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다른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공부꺼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내놓는 의견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힘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의견을 내기 전에 검토할 것들을 다양하게 확인했으므로 자신감이 있다. 그러므로 반대 의견이 나와도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유연하다. 혹시라도 토론 중 자신의 오류가 발견되면 기분 좋게 즉시 시인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오류가 나타나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되고, 나중엔..

깨달음을 얻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전히 새는 울고, 강물은 흐른다. 그래서 어렵게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도 "별거 아니네" 하면서 다시 경전 공부에 몰두하는 비구(比丘)도 있다. 그의 기대치에 영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특출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한 행동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 아마 그는 스스로 자기 생각들을 보통 때도 잘 정리하고 다스리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깨달음이란 더 이상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괴로움들은 대부분이 생각이 원인이다. '정견(正見)'이란, 모든 것은 변하며(無常), 몸이나 마음, 특히 생각이 나는 아니며(無我), 생각의 정리가 안 되면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라는 것을 바로 보는(見)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

선도(仙道)를 닦아 사람들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을 연구 발전시키는 사람을 '인선(人仙)'이라 한다. 그는 은둔하지 않으며,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버리지 않는다. 그의 삶은 부러울 정도로 풍부하다. 仙道 기초 공법만 습득하고 단전(丹田) 자리만 확보했다면,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며 산다면, 그를 '人仙'이라 부를 만하다. '지선(地仙)'이란, 소주천(小周天)과 양신(養神)을 통해 환지본처(還至本處)를 이룬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재물과 권세에 집착을 갖지 않고 살며, 기회가 있는 대로 절대계를 드나들기도 하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그를 '보살(菩薩)'이라고 부르며, 보시(布施)를 생활화하며 산다. '천선(天仙)'이란, 세상을 벗어나 지상 세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사..

불교(佛敎)의 깨달음은 머리에서 시작해(頓悟) 가슴을 거쳐(解悟) 배로 이동(證悟)하지만, 선도(仙道)는 오직 하단전(下丹田) 중심으로 공부를 간편하게 진행한다. 상중하(上中下) 丹田은 하나로 결합하여 있어서 下丹田을 닦으면 中, 上丹田은 저절로 닦아지기 때문이다. 선도에는 상기병(上氣病)이 없다. 그러므로 다른 수행으로 얻어진 상기병도 선도를 닦으면 저절로 없어지게 되어 있다. 몸, 기운, 맘(精氣神) 순으로 차례로 닦기 때문에 우선은 공부속도가 다소 느린 듯해도 기초가 되는 몸의 기운부터 든든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리함도 지니고 있다. 불교는 깨달음(性) 공부 일변도로 되어 있지만, 선도는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기본으로 한다. 성명쌍수란 性(본래 마음)과 命(건강과 사명)을 동시에 닦는다는 뜻으로 命으..
무위(無爲)란 '함이 없다', '애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기는 하지만, 한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도가(道家)에서는 無爲에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의 자연(自然)을 붙여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휘달리지 않고, 쫓기지 않고 살게 됩니다. 그대로 신선(神仙)의 삶입니다. 계율(戒律)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따로 보시행(布施行)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절로 그리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다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대로 自然無爲입니다.
한 번쯤 신선(神仙)처럼 살아 보는 꿈을 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나이만 먹다 보면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만다. 山에 홀로 사는 사람 TV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하지만 혹시나 하다가도 역시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사람들의 로망을 일부라도 충족시켜 주자는 시도이겠지만 소개되는 내용이 神仙의 삶과는 너무나 멀기 때문이다. 山에 산다고 하여 神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약초를 캐고, 계곡물에 몸 좀 담근다고 무슨 대수인가? 神仙의 길(仙道)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가는 길은 아니다. 神仙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비밀스러운(?)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물과 권력에만 의존하며 살지 않고, 그보다 더 본원적인 자기 속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