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이미 주어져 있다 본문
자기가 체험한 것과 동일한 체험이 없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고난의 역정(歷程)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실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깊은 삼매(Samadhi)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역사이래 수없이 강조되었던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주장들이 수많은 계파를 만들었고, 따르는 수행자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합니다.
단언컨대 깨달음의 체험은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말입니다.
깨달음은 찾아 얻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위한 길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리도 찾기 어려운 것은 누구에게나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至道無難唯嫌揀擇
우리가 어딘가를 찾아가려 할 때 출발지와 목적지가 동일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거나 무엇을 손에 쥐려 할 때 그것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출발지가 곧 목적지이거나 취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 손에 쥐어져 있다면 갈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습니다.
그 理致를 깨우친 사람은 노력을 내려놓습니다. 그것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단체나 스승의 말씀에 따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하고 산속 동굴로 갈 수 있습니다. 그의 암시에 따라 숨을 참으며 종일 꼿꼿이 있기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가 지정한 체험을 위해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귀의(歸依)하기에 앞서 탐색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지성(知性)을 십분 활용하여 그것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당신의 자유입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발품만 조금 팔면 가성비 훌륭한 것을 어디서든 값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정보들은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어느 정도 가격대에 어느 정도의 품질을 원하는지만 당신이 정하면 됩니다.
道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의지(意志)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아는 합리적 사고의 사람이고 이치에 맞게 道를 구한다면 더는 속지 않을 겁니다.
하늘이 알아서 바른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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