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깨달음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본문
"이 정도면 나도 깨달을 만 하지"라고 말하지 말라. 스승이 누구냐, 몇 년을 수행자로 살았느냐, 어디 어디를 다녀왔고, 선방(禪房)에서 몇 철을 났느냐는 중요치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기 자신이다. 결과로 말해야 한다. 지나간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진정 生死를 벗어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道를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할 각오가 정말 되어 있는지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라.
솔직해져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자기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꿈 같은 세상이라고 백만 번 외쳐도 아무 소용없다. 무엇으로 인해서든지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변명의 여지 없이 꿈에 젖어 사는 것이다.
수행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깨우치지 못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심지어 前生과 카르마까지 들먹여가며 적어도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가 웃을 일 아닌가? 그럼 누구 책임이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의 핑계를 단번에 무산시키는 말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이다. 깨달음을 사모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 말을 염두(念頭)에 두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기어올랐는데, 미련 없이 그것을 벗어나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겠는가? 정말 단단한 각오가 아니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眞理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非法이랴!"
그것이 아니라면 깨달음을 말하지 말라. 그것은 눈곱만한 미련만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그래서 수천수만의 깨달음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정작 자유의 길에 들어선 이는 눈 씻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無我를 이해한 사람이다. 지금 사는 이 세상이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고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 길에 바로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가는 곳마다 고향 가는 길이요, 만나는 물건마다 고향 것이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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