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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본문

Taiji Yoga/3. 깨달음 (Enlightenment)

세상은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thedaywemet 2018. 6. 14. 11:16

깨달음이란 별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았음을 알아챈 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이, 스스로 깨달아 깨달음에 대한 일점(一點)의 의심도 사라져 편안한 자리에 들면 깨달음이다. 


누구나 이미 깨달아 있다. 그래서 부처는 두 종류의 부처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스스로 부처임을 아는 부처요, 다른 하나는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부처임을 모르고 사는 부처이다.


세상은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기에, 깨달음을 찾기가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숨쉬며 살고 있는 사람이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생은 왜 미혹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가? 집착(執着) 때문이다. 


자기(自己)라는(我相)... 내 몸과 내 마음이 나라는(人相)... 나는 중생일 수밖에 없다는(衆生相)... 나는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壽者相) 착각(錯覺) 속에 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공기와 같다. 우리는 깨달음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다. 단 5분만 산소가 사라지면 살 수 없듯이  깨달음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다. 


그래서 깨달음을 가리켜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 "물 속에서 물을 찾는다"고 하며,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간장 맛 짠 줄만 알면 바로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다.


스승이 할 일은 깨달음의 의심을 없애주는 것이 모두이다. 총명한 사람은 말 한마디(言下大悟), 글 몇 줄에 깨닫는다. 


깨닫음을 위해서 애써 고행(苦行)을 할 필요는 없다. 용맹정진 장좌불와(勇猛精進 長坐不臥)도 전혀 필요치 않다. 단지 자기가 이미 부처란 것을 알아채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고집부리지 말고, 어줍잖은 알음알이만 내려놓으면 된다. 그것들이 깨달음의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어록(禪語錄)을 보면 모두들 쉽게도 깨달았다. 누구는 새벽별을 보고, 닭 우는 소리에, 몽둥이 한 대에, 마음을 가져오란 한마디에, 아름다운 풍경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깨달았다고 적혀 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세상천지 견문각지(見聞覺知) 모두가 깨달음의 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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