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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바라봄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다

알아챔 2023. 2. 28. 11:10

도대체 왜 깨달아야 합니까?
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것이 머리 깎고 사람들을 피해 그들끼리 외롭게 사는 것입니까?
 
많이 받는 질문이다.
 
석가모니가 출가한 원래의 이유는 병들고 죽어가는 것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이기지 못해 그는 왕위(王位)와 처자식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알아낸 것은 삶은 일체(一切)가 고통(苦痛)이라는 것, 그리고 '나'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諸法無我)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기 문제를 해결했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깨달음(見性)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보는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견성(見性)이란 글을 음미해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그는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모양을 바꿔가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를 추앙(推仰)하고, 그의 앞에 엎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역사 이래 자기를 깨우치려고 애를 쓴 사람은 너무 많다.
그들이 그리한 이유는 그것이 만족과 자유를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을 달리하지만, 그들도 깨달았었다.
 
불교의 Moksha(해탈)가 현대인에게 어떻게 와닿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자기를 알면 한 발 떨어져서 자기를 볼 수 있으며 더는 외로움, 우울, 두려움에 끄달리지 않고 당당히 살 수 있다.
 
신통력이 생긴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말자.
그것은 깨달음이 없어도 집중력만 투철하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니 말이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산다는 것이 과연 지성인(知性人)에게 용납될 일인가?

더구나 끄달리지 않고 당당히 세상을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끌릴 일이 아닌가?
우선 그헣게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흡하지만 답이 되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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