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신앙과 종교를 구별해야 한다 본문
사람들은 신앙(信仰)과 종교(宗敎)를 구별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고 말해야 옳다.
신앙과 종교는 혼용되어서도 안 된다.
신앙인들은 자기의 믿음을 '종교'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초로(初老)의 할머니가 새색시가 되고 싶어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편을 '신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신랑(新郞)'이란, 갓 결혼하였거나 결혼하는 남자, 혹은 신혼 초의 남편을 이르는 말이란 것은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종교(宗敎)'는 '꼭대기(宗) 가르침(敎)'이란 말이며, '신앙(信仰)'은 '우러러(仰) 받들어 믿는(信)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지만, 신앙은 100년 전과 지금의 신앙이 다르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미주(美州), 시베리아, 남미, 아프리카의 신앙이 각각 다르다. 같은 '불교', 같은 '기독교'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하지만 말이다.
종교(宗敎)는 사랑과 평화이며, 신앙(信仰)은 분열과 전쟁의 대명사가 된다.
종교인은 아름답고 고요한 정상(宗)에서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지만, 신앙인들은 결코 자기들과 다른 가르침은 배척한다.
신앙인들은 매우 적대적이다. 그들을 무지(無知)로 얼룩진 암흑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서로 반목(反目)하다가 결국은 서로 간에 피 흘림으로 마무리 짓고 말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에고(ego)를 내려놓고(虛心) 정상을 향해 오르고 오르지만, 신앙인은 자기들의 편견(偏見)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그것만을 믿으라 할 뿐, 나머지는 모두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다.
종교는 사랑을 강조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지만, 신앙은 입으로만 사랑을 외칠 뿐, 자기 믿음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이단(外道)으로 몰아 죽여없애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이나, 그 속엔 종교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를 사랑하는 이들은 축출되고 재물과 권력을 신봉하는 욕심쟁이 신앙인들로만 채워지게 되었다.
신앙 단체의 하부(下部)는 그래도 가능성이 남아 있는 착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들은 상부(上部)로부터 착취만 당할 뿐이다. 上部를 사악한 신앙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신앙할 수 있다. 나무나 개, 고양이, 소를 신앙할 수 있다. 형상물(形象物)이나 가상(假想)의 것을 만들어서도 신앙할 수 있다. 인도에 가면 코끼리를 신앙하고 심지어 쥐를 신앙하기도 한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우러러 받들어 믿게(信仰) 되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마땅히 하느님, 부처님과 친구가 되어야 하며, 그들을 닮아 그들처럼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종교는 이미 최고이므로 스스로를 최고라 할 필요가 없고, 이미 정상에 올랐으니 누가 높다고 다툴 필요조차 없다.
성경(the Holy Bible)을 보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그러나 첫 번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이다. 그 말을 성직자들은 “이교도는 죽여도 된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살인을 넘어서서 미물(微物)도 죽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타국군이 침범해오면 중들이 군인으로 변한다. 계율보다 조국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앙과 종교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으며, 그런 사람을 가리켜 “깨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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