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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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그의 글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고 말했답니다.
그 말이 신통했던지, 버트런드 럿셀(Bertrand Russell)의 영국학계서는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위를 주었다는군요.
나중에 "당신들은 아마도 내 글을 이해도 못했을꺼야"라는 비웃음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선가(仙家)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리 신통치는 못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여 말한다는 한발 더 나아간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이 난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몇몇의 문장, 즉 "답이 있기에 질문은 성립한다", "자연의 법칙은 자연을 모른다", "비유가 사고방식을 구속한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진보는 없다" 등등을 읽으면 그의 심사를 거의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형 두 명이 자살하는 것을 보면서 삶의 의욕을 접었지만, 차마 자살을 못한 것은 지옥이 두려워하는 기독교 신앙 때문이었다지요?
이제 그가 어떻게 최전선 교전상황에서 쪽지 노트(논리철학논고)에 열중할 수 있었고, 왜 많은 재산을 모두 양도했으며 늙어서는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고 오히려 반가워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겠지요?
그는 우리와는 사고가 다른 괴짜일 뿐, 천재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그를 하느님처럼 존경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단지 나의 뇌피셜로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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