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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기는 이를 따르고(理發氣隨), 이는 기를 타고(氣發理乘)있다는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의 상반된 주장이 있습니다. 그 둘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아무나 쉽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명(自明)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들을 '알아채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성(自性)이라 하고, 알아챈 것을 깨달음이라 합니다. 알아채는 자가 없다면 主理든 主氣든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나 동일하게 보고, 듣고, 느끼며 삽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주인으로 살지만, 중생(衆生)은 하인으로 삽니다. 주인은 늘 여유롭습니다. 끄달리지 않고 삽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늘 불안합니다. 혹시 잘못될까 근심 걱정을 일상사로 삽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사자라면 衆生은 개와 같습니다.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그것을 쫒아 달리지만, 사자는 흙 던진 자를 뭅니다.
불가(佛家)의 공부가 사념처(四念處)라면 선가(仙家)의 공부는 의수단전(意守丹田) 하나로 집약된다. 丹田 意守는 자연스런 사념처(身受心法) 공부이기 때문이다. 깨달음 공부의 어려움이 일념(一念)이듯이 선도(仙道) 공부는 丹田이 Open되어야 한다. 一念이 견지(堅持)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듯이 단전(丹田)이 활성화 되는 순간 仙道공부는 순풍(順風)을 얻게 된다. 불도(佛道) 공부와 仙道 공부는 낙처(落處)가 다르다. 불도는 윤회(輪迴)도 끊긴 완벽한 소멸(涅槃)이 목표지만, 선도는 생사(生死)를 초월한 신선(神仙)이 되어 만락(萬樂)을 누리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