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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무아가 맞다면
불교의 중심은 삼법인(三法印)이며,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입니다. 그리고 과거 석가모니가 그랬듯, 우리의 소망도 '괴로움(苦)의 해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무아가 맞고, 그것이 깨달음의 요체라면, 고(Suffering)는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없는데, 누가 苦를 느끼며, 또 누가 고를 해결하겠습니까? 三法印이 아니라 二法印이었으면 좋았을 법합니다. 석가모니는 브라만교(Brahmanism)의 Atman에 너무 집착했는지도 모릅니다.
달과 손가락
2023. 3. 16. 00:19
아트만(Atman) 그리고 무아(無我)
힌두교와 불교(佛敎)는 '나'라고 하는 영구적 실체(實體)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이 가능하다. 깨우침을 얻은 싯다르타는 "항상(恒常) 하는 것은 없다(無常)"에 이어,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다(無我)"를 설했으며, 그것은 브라만교를 비롯해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던 아트만(Atman) 영구불변설(說)을 뒤집어엎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나라는 실체가 없다'면 윤회설(輪迴說)은 단지 설(說)로만 끝나고 말 일이었다. 하지만 싯다르타가 입멸(入滅)한 후, 인도의 거의 모든 불교신자는 다시 브라만교에서 개명(改名)을 한 힌두교로 개종(改宗)하였으며, 불교는 인도 밖으로 옮겨갔다. 성경(the Holy Bible), 특히 구약(舊約)을 보면, "영혼은 죽으며(에스켈 18:4)", "온유한 의인들은 천당이 아니라 ..
Taiji Yoga/6. 무아론 (Anatman)
2020. 8. 15.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