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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들고 나는 숨을 관찰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그리고 관찰을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알게 됩니다. 숨은 곧 에너지(氣)이기 때문입니다.편안함을 얻는 것에서 공부를 그칠 수 있습니다.하지만 편안함은우리를 잠으로 유도합니다. 그것은 건강에 유리합니다.거기서 공부를 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활용이 목적이라면, 주시력(注視力)을 더 길러야 합니다.주시가 끊기면 에너지도 끊기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단전(丹田)입니다. 단전은 주시의 견인차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치듯이,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이 있는 한, 마음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마음을 적정(寂靜)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바람을 불지 않게 하겠다는 것, 즉 자연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바람은 불도록 두어야 하고, 흐르는 강물은 흘러가도록 두어야 합니다.마음이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그대로 두고, 다만 그것을 알아채기만 하십시오.열흘을 내리 부는 바람은 없고, 내가 보았던 강물은 어느덧 저 멀리 사라지고 없습니다.고락(苦樂)은 하나입니다.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알아챔의 기둥만 세워 놓고 있다면, 세상만사는 한편의 교향곡입니다.걱정하지 마십시오.오면 가게 되어 있고, 가면 다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그것이 이치(理致)입니다.
님은 참을성도 많으시고 너무도 친절하십니다. 기회만 있으면 찾아와 주시는데, 나는 그리도 무심히 흘려보내기만 했지요. 長白山 天池가 눈앞에 드러나는 그 순간, 교통사고로 정신이 가물가물할 때, 一點 수련 중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안길 때, 우연히 들은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서, 첫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출 때, 그리고 단전이 깨어나 온몸에 에너지가 요동칠 때 등등... 가슴을 흔들며 수도 없이 나타나 주셨지요. 몇십 년을 그저 무심히 지내다가, 마침내는 철걱철걱 시계 소리로 온갖 미련한 생각들을 모두 녹아내리게 하였지요. 님은 침묵만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이 '몸'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마음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 공부란 것은 마음과 나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마음은 내가 아니다. 마음은 조정의 대상이다. 그것까지 알아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 마음 공부다. 마음의 정체를 알아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알아채는 놈을 알아채야 깨달음이다. 그리고 알아챈 후에 내가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오래 묵은 생각을 바로볼 수 있어야 한다. 요지부동의 의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안다는 것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컴퓨터 속의 저장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소극적..
시집을 가거나, 하던 일을 뒤로 하고 절로 들어가는 것을 '출가(出家)'라 한다. 하지만 '가출(家出)'이라 하면 불량(不良)해 보인다. 요즘 출가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삶에 지쳤고, 속세(俗世)에서는 '자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란다. 하지만 삶에 지쳐 가족과 생업을 떠난다면 그것은 가출이라 해야 옳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찾는답시고 머리 깎고 절로 가거나, 인도나 미얀마 히말라야로 떠난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찾는다는 그 '자기(自己)'를 절에서, 인도에서, 히말라야에서 잃어버렸는가? 늦은 밤 가로등 밑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여인에게 행인이 물었다. "무엇을 찾고 계신가요?" "바늘을 찾고 있습니다." "바늘을 어디서 잃으셨는데요?" "바느질하다 방에서 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