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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고, 저것이 없은 즉 이것도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작용(作用)과 연기(緣起)를 알아챈 것입니다. 괴로움이란 잘못된 의미 부여로 인한 부작용입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그것에 별다른 의미(意味)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가 버립니다. 이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 만사(萬事)의 작용처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면 언제나 여여(如如)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없애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온갖 생각 속에 지낸다 할지라도, 단전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에너지를 부여하지 않으면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단지 에너지를 지키며 살 뿐입니다. 언제나 빈틈이 없이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 그것을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 합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때, 화막(Screen)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영상을 따라 울고 웃을 뿐입니다.영사기가 멈추면 비로소 스크린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잠시 전에 비가 오고 화산도 폭발했지만, 스크린에는 흠집 하나 없습니다.순수의식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이 빈 스크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하지만 그것이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드는 본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을 비추면 화면에 온갖 것들이 나타나듯이 말입니다.우리들은 매일 그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 삽니다. 의식하는 놈은 의식(意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사가 온통 돈과 편안함에만 있으면, 은연중 자기가 서서히 지워져 가는 우울함이 있습니다. 온갖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사 가운데서 자기가 자성(自性)에 얼마나 ..
직관력(直觀力)이 있는 사람은 빠른 결정을 내립니다. 다소 오류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은 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置簿)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속도가 빠릅니다. 그에게는 후회할 시간이 없습니다. 직관력은 그에게 후회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서 다음 진행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직관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출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순수의식(純粹意識)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그 자리, 마음의 중심 자리에 머물겠다는 마음의 태도, 그것이 직관력을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는 말은 잘못된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물은 선입감 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말 Just Look을 위해선 순수의식이 필요하다. 오류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수(龍樹)의 중도(中道)가 빛난다. 그리고 방하착(放下著)이 새롭게 다가온다.
단전(丹田)이 살아있고 소주천(小周天)이 된 사람과는 척을 지지 않는 것이 좋다. 丹田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은 의식과 에너지(氣)가 계합(契合)되었다는 말이다. 丹田은 잡념을 무산시키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염력을 일으킨다. 염력(Psychokinesis)은 모든 것을 이기는 순수의식의 힘이다. 丹田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몸을 바로잡고(調身), 그리고 의식(意識)의 초점(調神)을 단전에 두고 호흡(調息)으로 불을 지펴야 한다. 일념(一念)을 가지고 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반년이면 丹田을 깨울 수 있고, 그 후 3년 정도면 단전을 살려 선계(仙界)에 입문(入門)할 수 있다. 얼마나 성심(誠心)으로 공부하느냐, 그리고 스승이 누구냐가 성패(成敗)를 가름한다. 인연(因緣)을 소중히 하고, 가고 가고 또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