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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스스로 자기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해 줄 사람은 귀하다.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지는 말라.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 말이다. 하느님도 신자(信者)들이 부를 때만 하느님이지, 자기를 칭할 땐 나 ’야훼(YHWH)라고 이름을 밝혔고, 과거 임금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짐(朕) 혹은 과인(寡人)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덕(德)이 적은 사람이란 뜻이다. 목사나 신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목사님, 신부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유독 자기에게 ‘님’자를 붙이는 집단이 있는데, 요즘의 어린 승려(僧侶)들이다. 과거의 승려들은 자기를 소승, 혹은 빈도(貧道)라고 불렀는데 말이다. 석가모니는 자기를 비구(比丘)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은 전혀 다른 신앙 형태다. 그 둘은 같은 불교가 아니다. 대승의 승려가 소승으로 가는 것은 마치 개혁신교(改革新敎)의 목사가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 소승의 가르침은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므로, '열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만, 대승의 교리는 열반적정(涅槃寂靜), 즉 원래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것이다. 소승은 완전한 열반(無餘涅槃)에 이르기 위해 몇 生을 거듭나며 닦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바로 열반적정을 자각하면 그것으로 상락아정이다'라고 대승은 가르친다. 신앙은 자유다. 완전한 소멸을 위하여 몇 생을 다시 태어나 닦는 쪽을 택하던가, 지금 담박 깨우쳐 영원한 행복을 이르든가,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다.

해탈과 열반은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말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혼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해탈(解脫)은 어원이 산스크리트어 'moksha'이며, 그것은 '삶에 닥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어떤 일도 고통이 되지 못한다.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신의 장난(릴라; lila), 헛것(幻)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 마쳤기 때문이다. 열반(涅槃; nirvana)은 시타르타(佛敎)의 새로운 개념이다. 그것을 단지 번뇌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기엔 미흡하다. 그것은 소생이 불가능하게 된 생명의 완전한 소멸이다. 거기에 윤회(輪廻)는 붙을 여지가 없으며, 힌두의 해탈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초기불교는 혹 깨달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초장(수다원, 사다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