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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구원이란 고통과 죄악으로부터 건져지는 것, 그것의 결과로 영생을 얻는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없지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행위가 따라야 한다. 성경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 2:26)'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를 알아야 진정한 구원이 있다. 구원받을 대상자가 바로 '자기'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누구란 걸 알려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배워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얻어 들은 자기는 자기가 아니니 말이다. 자기를 알려면 깨달아야 한다. 깨달아야만이 제대로된 자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교파가 있지만 그것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믿는다. 깨달음은 지식에서 얻는 것이 ..

1991년,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며,'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 이유로 학장은 물론 목사직에서도 면직됐다. 그의 제자인 이현주 목사는, "그가 '기독교 안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그런 일은 기독교뿐만이 이니라, 의외로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특히 불교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불교에 대해 언급하면 심히 불쾌해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름없이 배타적(공격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칼라마경에 나오는 부처의 가르침을 같이 읽어보자.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沙門) · 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은 설명하고 드러나..

여기 빚을 진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헤어나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하고, 10년 동안 고생 고생해서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하지만 얼굴에 철판 깔고 오래 버티면 빚을 안 갚고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얌체 같은 짓이지만 말입니다.그것 역시 10년이면 얼추 해결됩니다.Bible(에페소서 2:8,9)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그 말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해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아멘, 믿습니다"만 반복하면 구원받는다 합니다.그래서 신도들이 목사 설교 중에 그 소리를 크게 지르나 봅니다.우리의 생각, 말, 행위 모두는 업(業)이 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서라도 기필코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의 원인이 그것 때문이라..

진리는 모두를 하나로 아우른다.그러므로, 기독(基督)만이 진리라는 말이 독선(獨善)이듯이,불교(佛敎)만이 진리라는 말도 옳지 않다.이(理)와 기(氣)는 하나다(理氣一元).그러므로, 理를 깨우쳤으면 氣 역시 갈고 닦아야 한다.이것이 있으면 필히 저것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이것뿐"이라는 관념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한 과목만 잘해서는 시험에 통과할 수 없다.견성(見性)을 했다면 氣를 알아야 하고,소주천(小周天)을 이루었다면 본성(本性)을 깨우쳐야 비로소 완성이다.더 이상 찾을 것이 없어야 한다.더 이상 기웃거림이 사라져야 한다. 하나가 된 자는 부족함이 없으며, 남의 동네에 가서 자기의 깨달음을 말할 필요 역시 없다.그런 사람을 무사인(無事人)이라 부른다.
구원(救援)에 대한 해석은 종파별로 다르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해석이 가장 무난하다. 구원은 타력(他力)에 의한 것과 자력(自力)에 의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타력에 의한 구원은 신앙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신앙은 무조건적, 절대적이어야 한다. 우선 스스로가 죄인임을 믿어야 하며, 죄 사함을 해주신 대속주를 믿어야 한다. 조물주를 믿어야 하고, 그의 사랑과 그가 마련한 계획들을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한다. 반면에 자력의 구원은 매우 간단하다. 자신의 정체성만을 확인(見性)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자각(自覺)을 이루는 순간,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풀린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가 이미 구원받았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타력의 신앙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간증한다. 그러나..
성서는 예수가 세상의 죄를 사하기 위해 형주(刑柱)에 달렸다고 전한다. 이해가 안될지 몰라도 그것으로 우리를 묶고 있던 연좌제(緣坐制)에서 자유롭게 했으며, 그래서 그를 구세주(救世主)라 하는 것이다. 아담이 지은 죄(善惡果)로 인해 그의 후손 모두는 죄인이라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그것(原罪)은 유대인들의 신앙이었으며, 예수 역시 그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세상에 온 소명은 대속(代贖)이었다. 그것은 그의 목숨을 神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인간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싶었다. 그는 죄로부터 자유로운(善惡을 넘어선) 사람이었다. 죄는 자성이 없으며,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것(罪無自性從心起)임을 께우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속 이후 인간들은 죄에서 벗어났으며 영생의 길이 열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