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허망을 새로운 시작으로 본문

和光同塵

허망을 새로운 시작으로

thedaywemet 2019. 12. 7. 08:00


道는 세상을 살아가는 으뜸(首) 이치다.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있지만, 그것이 없어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깨우침을 가리켜 흔히 "소식이 온다" 혹은 견성(見性)이라 말하는데, 그 일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통과해서(through) 이루어진다.

그 일은 일상 중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늘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보되 보지 않고, 듣되 듣지 않고, 느끼되 느끼지 않고, 생각하되 생각지 않으면(through), 그 자리(首)는 바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이른 것을 가리켜 도통(道通)이라 하는 것이다.

말했듯 그것에 이르기는 너무나 쉽다. 그것은 지금 여기 이대로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도(仙道)에서는 그 자리에 대해 그리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냥 내려놓기만(relax) 하면 바로 얻어지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선 견성((見性)을 하고, 이어서 닦아가는 것이 순서이다. 그 자리가 모든 공부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 이르는 순간 통상적으로 공적(空寂)을 체험하는데, 그것을 불교에선 허망(虛妄)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작(reset), 희망(希望)이라 하고 싶다.

그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허망은 매우 비관적이지만, 새로운 시작(reset)은 희망이며, 낙관(樂觀)이다. 그것은 분명히 무산(霧散)이지만, 그 이후 새로운 설계로 새로운 일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꺼졌다"는 뜻의 열반(涅槃)이라 부르지만, 대자유를 얻는다는 뜻의 해탈(解脫)이라고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깨달음은 문득 깨치는 것(頓悟)이며, 공부의 끝이 아니다. 사실상 공부로 견성(見性)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깨달음 이후부터의 공부가 진짜 공부다.

견성은 새로운 시작(reset)이며,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 생명(生命) 공부, 사명(使命) 공부가 펼쳐진다.
 
그것을 줄여 우리는 명(命) 공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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