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무아론과 진아론 본문
초기 불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는 '무아(無我)'이다.
반면, 힌두교와 대승불교 사람들은 '아트만(Atman)'과 '자성(本來面目)'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각자 자기주장이 옳다고 끝이 없는 논(論)을 펴지만, 과연 양쪽 모두 관념(觀念)의 한계를 벗어났는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무아론(無我論)과 진아론(眞我論)이다.
한쪽은 2500년 전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알려진 삼법인(三法印) 중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신봉하고, 다른 한쪽은 체험을 통하면 무아(無我) 그것을 알아채는 놈이 확연(確然)하므로 그것을 '진아(眞我)', 또는 '자성(自性)'이라고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상호의 주장이 모두 일리(一理)가 있는 데다 첨예(尖銳)함으로 결론은 후일로 미루기로 하고, 아래 이야기를 통해 각자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치통(齒痛)으로 고생하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그가 고생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다른 수행자가, "나라는 것은 없다는 걸 모르는가? 내가 없는데 치통인들 어찌 있을쏘냐!"라며 몇 번을 놀려대었다.
여러 차례 놀림을 당한 수행자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주먹으로 상대의 코빼기를 후려갈기며 코피를 흘리고 있는 도반(道伴)에게 말했다.
"너는 맞은 적이 없을 거야. 나도 너를 때린 적이 없으니. 때린 놈과 맞은 놈은 없는데 먹먹해진 코와 뻘건 코피만 있겠지. 안 그래?"
그냥 우스개로 듣고 흘려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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