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연기(緣起)의 중심에 氣가 있다 본문
보는 자와 대상(對象)은 둘이 아니다. 그 둘은 연기(緣起)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주체(主體)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엄연히 그것들은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작용에 의해 그 둘은 동시에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선도(仙道)에서는 그것의 주체를 기(氣)라고 한다.
氣가 없이는 주체가 있기는 있되 주체라 할 수 없고, 대상이 있기는 있되 대상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주체가 대상을 만날 때 그것을 알아채고 있는 묘(妙)한 것이 있는데 선가(禪家)에선 그것을 영지(靈知)라 부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뒤에는 그것을 작용시키는 에너지가 활발발(活潑潑) 하고 있다.
仙道에서 氣를 중시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작용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이는 무엇도 생겨나지 못하고 무엇 하나 사라질 수 없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적절한가?
우리는 그것을 氣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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