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두 가지 양심 본문

일상 속 바라봄

두 가지 양심

thedaywemet 2019. 9. 2. 08:00


세상엔 두 가지 양심이 있다. 그것은 '상대 양심'과 '절대 양심'이다.


정치가에겐 정치가의 양심이, 상인에겐 상인의 양심이, 검사에겐 검사의 양심이, 변호사에겐 변호사의 양심이 있다. 그런 것을 상대 양심이라 한다.

정치가의 양심은 자기 지역구 이익을 벗어나기 어렵다. 큰 정치가라 할지라도 자국(自國)의 이익을 대변할 뿐, 타국에 대해선 배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인의 양심과 같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정치가의 양심이 있으며, 게다가 수행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절대 양심의 소유자여야 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결코 정치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종교가 정치를 겸하려 했을 때, 세상은 예외 없이 망조가 들었기 때문이다.

신앙과 종교는 다르다. 신앙인의 양심은 결코 타 종교에까지 그 배려가 미치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해가 상충하는 날엔 교리와 관계없이 살인과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절대 양심이란 종교인(수행자)의 양심을 말하며, 그것은 하느님의 양심과 통한다. 그것은 차별하지 않는 양심이다. 세상 전체가 자기 범위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와 "자비(慈悲)"가 절대 양심과 가까운 말이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에게도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나는 것이 절대 양심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를 수행자라 할 수는 없다.

수행자는 싸움을 말리는 어른 노릇을 할 뿐, 결코 어느 정당(政黨)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
 
신앙은 자유이지만, 정치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語不成說)다.

정치인이 되는 순간, 괴변을 써서라도 자기의 독선을 감추고, 바른 양심이라고 속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728x90
반응형

'일상 속 바라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남 좌파  (0) 2019.09.04
출산율 걱정  (0) 2019.09.04
한일갈등 누구 책임인가?  (0) 2019.08.29
촛불정신 훼손하는 조국은 사퇴하라???  (2) 2019.08.28
고노다로의 말이 맞다  (3) 201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