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아상(我相)이라는 말 본문
불교 경전 금강경을 보면, 귀찮을 정도로 많이 나오는 말이 '아상(我相)'이며,
허망(虛妄)한 것이므로 제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역설한다.
그 영향인지 그 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하루 빨리 버려야 할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한편으로는 그것을 마치 보물처럼 가슴에 지니고 산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상(我相)이란, 단지 ‘나라고 하는 생각’이며, 나의 소유물일 뿐이다.
그것은 애지중지할 것도 못 되고, 내다 버릴 정도로 악취나는 것도 아니다.
아상(我相)은 그저 나하고 함께 사는 오랜 친구이며, 가족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나타났으며, 죽일 수도, 갖다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이다.
아상(我相)에 대하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 쳐놓고 아상(我相)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아상(我相)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들 역시 그것으로 깨어나고 그것으로 잠든다.
그것이 없이는 살 수조차 없다는 말이다. 아이러니 중에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상(我相)을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으로 알고 적절하게 대접한다.
아상(我相)이 없이는 먹을 수도, 입을 수도, 누구와 이야기를 할 수도,
또한 사랑을 나누고 보시(布施)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보다 아상(我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귀(貴)하게 대접하는 첫째 이유는
그것이 없이는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있다.
煩惱(괴로움)와 菩提(깨우침)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집착(執着)을 부르고 집착은 고통(苦痛)을 부른다.
하지만 그 집착을 잘 관리하면 ‘도(道)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석가(釋迦)가 말한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아상(我相)에서 고통이 오지만, 아상(我相)이 없이는 깨달을 수도 없다.
아상(我相)은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그리고 안내자는 우리를 목적지에 안내한 후에는 자기 갈 길을 가는 친절한 존재이다.
목적지에 아직 도착하지도 못한 형편에 안내자를 ‘없애야 한다’, ‘죽여야 한다’는 둥 어리석은 망발을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그것처럼 바보는 없다.
아상(我相)은 가끔 문제를 일으켜 나를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나의 친구요, 나를 궁극적(窮極的) 깨달음에 도달하게 해 줄 은인 중에 은인(恩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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