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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마음은 가슴에 자리 잡고 있고, 신(神)은 눈과 함께 있다. 눈을 육안(肉眼)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들어도 보고, 맡아도 보고, 맛도 보고, 느껴도 보고, 알아차려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神)이라는 글자는 보일 시(示)로 시작한다. 실로 흥미롭지 않은가?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무엇을 나라고 해야할까? 간단히 없다(無我)고 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없다", "있다" 고 규정하는 그놈은 누구인가? 몸이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변함없이 지켜보는 그놈은 어찌할거나?

깨달음은 당신 자신의 것이다. 누구의 말이나 글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神이든 부처든, 그 누구도 깨달음을 줄 수 없다. 까닭 없이 추상적이면 100% 실패한다. 그것은 교리(敎理)나 어떤 신앙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을 위해 가족과 생업을 버릴 필요는 없으며,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된다. 체험에 의지하지 말라.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며,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당신의 알아차림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뿐이다. 적어도 그것을 위해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생각을 줄이고, 주시자(注視者)로 남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는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모으는 주시자(注視者)가 되어야 한다. 걷거나 외단공(外丹功)을 진행하면서, 나의 몸 움직임을 관찰해보자. 알아차려 보자. 두 번째는 일어나는 느낌들을 관찰한다. 현재에 머무르는 데 매우 유효하다. 세 번째는 마음의 흐름을 관찰한다. 들떴는지, 고요한지, 무슨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자아의 현주소를 알게 된다. 네 번째는 대상에 대한 반응을 관찰한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대상과 나와의 상관관계에 마음을 모은다. 나의 경향을 알고 안정된 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안다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관찰자로 관찰자를 관찰한다. 이제 자성(自我), 주인공의 정체를 알게 될 날이 머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