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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2019년은 한국에게 특별한 해이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기는 해라는 것은 정신개벽(精神開闢)의 시금석(試金石)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물질보다 마음이,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심(內心)은 다르다. 그들의 마음속엔 무엇보다 돈이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생활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3만 불의 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로부터는 벗어난다는 뜻이다. 상당히 가슴 벅찬 일이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도 피할 수는 없다. 나태함도 나타날 것이고, 알코 중독이나 자살률도 늘어 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국한할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위장된 자기보다는 정체성(正體性)에 관심을 돌리게 되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명..

치매 환자의 웃지 못할 이야기다. 정신이 깜박깜박해 부인과 딸을 혼동(混同)하는 처지인데도 부인과 약속한 금요일 밤 사랑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사(情事)를 마치고 나선 시작을 하려고 바지를 벗었는지, 마치고 났는지가 헷갈린다는 것이다. 아들딸은 몰라봐도 뜨개질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는 할머니도 있다. 내가 벌써 치매인지는 몰라도 계란이 필요해 냉장고 앞에 서선 내가 왜 그 앞에 섰는지 생각 안 나는 때가 너무 많다. 핸드폰을 서랍에 넣어두고 반나절을 찾을 때도 있고 ㅎㅎ 하지만 너무 감사하고 축복스러운 것이 있다. (자랑이다) 경전(經典) 구절은 늘 입에서 맴돌고, 눈만 감으면 바로 선정(禪定)에 든다는 것이다. 절대로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버벅대지 않는다. 그리고 챙기지 않아도 임독맥(任督..

태극권(太極拳)을 중국의 것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래전 白頭山(長白山) 신선(神仙)들로부터 전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국처럼 합중국(合衆國)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 역시 거의가 타민족으로부터 흡수된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두 개의 신령(神靈)한 山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백산(白頭山)이고, 하나는 곤륜산(에베레스트) 입니다. 지금 그들은 두 산을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시다시피 30만 이상의 중국군을 잃고(마오쩌둥 아들도 전사) 반쪽을 얻었고, 하나는 티벳을 이유 불문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그들에게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종 태극권 앞에 中國이란 글을 붙여 씁니다. 중국의 것이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삼매(三昧)'란 산스크리트어 Samadhi의 음역(音譯)이다. 사마디란 잡념을 버리고, 마음의 본래 자리를 찾으라는 말이다. 결코 정신을 어둡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세 가지 어두움(ㅋㅋ)이라고 직역(直譯)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망발(妄發)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이끄는 선생이란 이름의 마귀들이 있다. 그런 가르침 때문에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다. 눈 뜨고도 코 베어 가는 세상에 어두워지라니? 깨닫기 위해선 밝아져야 한다. 성인들마다 이구동성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지 않던가? 오해 없기를 바란다.

자주국방(自主國防)이란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해,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 동맹을 맺을지라도, 적어도 내 나라가 타국의 침탈(侵奪)을 받지 않을 정도의 국방력은 지녀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경제력이 커졌다고 한다. 그것은 곧 국방력일 테니 마음 든든하다. 내 몸과 마음 관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 역시 누구에게 의지(依支)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주적(自主的)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의지(意志)를 세워 용의주도한 심신관리(心身管理) 계획을 짜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스스로 관리를 하게 되기까지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에너지(氣) 수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취미처럼 되지 못하면 어렵다. 즐거워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신관리에..

붓다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몸은 경시하고, 마음에만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소화기나 순환기 질환, 그리고 허리, 어깨, 무릎 등의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정신적 고통도 힘든 일이지만, 육체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과연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여여(如如)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불교를 폄하하는 말은 물론 아니다. 몸의 편안함도 마음만큼이나 소중한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심신(心身)이 함께 편안해져야 진정한 해탈(解脫)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