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멸 (2)
谷神不死

등산을 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당신은 왜 산을 오르는가?"라고 물었다. 그의 답은 "산이 있으니까"로 매우 간단했다. 이미 부자가 된 자에게 "왜 부자여야 할까"를 묻거나, 왕에게 "왜 왕이어야 하는가" 물어보았는가? 대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처럼 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철학자들 역시 직접적인 답을 피한다.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우리 삶의 목적을 오직 조물주(神)에 대한 찬양이라 말할 것이고, 불교는 영원한 소멸(Nibbana)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 목적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는 사람에게 "왜 당신은 서울에 왔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물으려면..

열반(Nibbana)은 모든 불교도가 바라는 기독교의 천국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신비)의 경지, 즉 완전한 고(Suffering)의 해결 자리로 보고 있다.그러나 열반(涅槃)의 의미는 생명의 불이 꺼진 상태, 즉 소멸(消滅), 멸절(滅絶)이다.싯다르타의 깨달음은 "'나'라는 실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諸法無我)"는 것이었다.'나 없음(無我)'을 불교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三法印)로 받아들인다.싯다르타는 그것을 알아챔으로 고민하던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했다고 공언했다.하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을 내려놓고, 니체처럼 생각이란걸 해보자.과연 그의 깨달음의 요체, 존재하지 않는 것에 고통이 있을 수 있는지?또한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죽어서 몸이 사라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