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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서양철학자 포함)은 대부분 인생을 고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고(苦)와 낙(樂)이 하나라는 것을 모른다. 그들에게 낙은 거의 사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낙(樂)이다. 우리가 더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들이 그리도 인생을 비관적(悲觀的)으로 보는 이유는 아직 실제적 본성(本性)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와 함께하는 순간, 苦도 樂도 없다. 그것들은 일어나는 당신의 생각이 그리 규정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苦가 일어나는 이유는 기운(氣運)의 흐름과 관계가 깊다. 기운의 운행만 원활하면 늙었어도 하루하루가 여유롭다. 작은 꽃 한 송이,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도 그를 즐겁게 한다.
사람은 참 이상도 하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어도 한쪽은 낙관적(樂觀的)으로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비관적(悲觀的)으로 자기를 괴롭히며 산다. 한쪽은 인생의 밝은 면을 비추며 다소 괴로운 일이 있어도 무상(無常)의 이치에 따라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인생은 '결국 고통뿐(一切皆苦)'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괴로움을 낙(樂) 삼으며 살아간다. 한쪽은 무아(無我)를 모두가 하나(Oneness)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늘 감사하며 베풀어 가며 살지만, 다른 한쪽은 일체가 허망(虛妄)하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가며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 신앙(信仰)하며 산다. 한쪽은 살아있는 동안 험한 형편이나 다소 병약한 체질을 바꾸며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다른 한쪽은 삶에 대한 염세적(厭世的) 태도로 죽지 못해서 ..
밥투정하는 아이는 밥이 맛없어서가 아니다. 엄마빠의 관심을 끄는 것이 목적이다. 삶 투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삶이 공허하다느니, 지루하다느니 하지만 삶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하다. 정히 삶이 맘에 안 들면 더 이상 밥 축내지 말고 어서 가면 된다. 갈 때는 가급적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동식물들의 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그들을 먹고 살았으니 말이다. 이왕 살려 한다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여야 한다. 공허하다느니, 지루하다느니 하는 말은 사치다. 정말 생사(生死)가 일여(一如)라고 믿는다면, 구구한 이야기도 필요 없이 그냥 가면 된다. 선도(仙道)를 닦는 사람, 밝아진(見性) 사람은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에겐 날마다 좋은 날이며,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