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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권세가 있는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학식이 있는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욕심 많고 악한 사람도,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세상 사는 데는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꼭 알고 살면 편리한 것이 있고,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것이 있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자기(自己)와 기운 기르기이고,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 자기를 알고, 기운 기를 줄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즐기며 활력 있게 살지만, 자기를 모르고, 기운 모으는 법에도 무식한 사람은 세상에 질질 끌리며 패배감 속에 산다. 하느님과 진리는 몰라도 그 두 가지만 알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1. 비이성적 사이비(似而非)에 빠진 사람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성적(理性的)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어렵다. 사이비에 빠지면 점점 더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복적인 세뇌(洗腦)로 주체성을 상실시키기 때문이다. 2. 고립감 친구가 없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에게 사이비(似而非) 종교는 매력적이다. 그 속에서 비슷한 사고를 하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인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3. 불안정한 삶 겉으론 안정되어 보이지만, 세상은 원래가 무상(無常)하다. 삶 자체는 일률적일 수 없으며, 불안정하다. 불안 속에 사는 깨어있지 못한 사람에게 사이비종교는 답이 될 수 있다. 안정감을 제공하며, 자기 문제를 쉽게 ..

걱정도 팔자(八字)라는 말이 있다. 걱정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그 속에 갇히는 것이다. 역사 이래 걱정을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스스로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왜 불안해지는가? 스스로 자기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불안 역시 그 뿌리는 무지(無知)이며 원치 않는 미래를 현재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소 뻔뻔해져도 좋다. 자기 마음의 조건들을 당당하게 재편하라.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기만 해서 쓰겠는가?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다. 현재만이 실재(實在)하기 때문이다. 깨어있으라. 그것만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신앙(信仰)이란, '믿어(信)' '우러른다(仰)'는 뜻입니다.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것은 무지(無知)와 통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자, 가진 자는 믿지 않습니다.모르기 때문에 믿고, 구할 것이 있어 믿습니다. "우러른다"는 말은 "위를 향하여 정중히 고개를 쳐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떨 때 우러릅니까? 돈을 우러르고 권력을 우러른다면...먹을 것을 우러르는 짓을 하고 있다면 개돼지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세상은 깨어나고 있습니다. 왜 신(God)들의 세력다툼에 우리가 이용당해야 할까요?지금은 깨달음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개벽開闢(Open & Open)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은 왕왕 '전생의 업(Karma)' 때문이라고 퉁쳐 버리려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주효했습니다. 물론 해결 안 되는 문제로 골치 싸매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전생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상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무지(無知)와 집착 때문입니다. 전생으로 밀어붙여서는 아무 해결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무지와 집착을 해결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신앙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말입니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더 고생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의 원인은 무지(無知; ignorance)입니다. 성인(聖人)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우리를 無知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깨어나라"고 말입니다. 무엇에도 속지 마세요. 누구도 당신을 구원해줄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을 구원할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적어도 "저절로"를 말하려면 무위(無爲)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무위를 이해하려면, 무아(無我)를 이해하여야 하며, 연기(緣起)와 팔불(不生不滅, 不常不斷, 不一不異, 不來不去)을 깨우치고 있어야 한다. 통상 "저절로"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저절로가 아니다. 원인(因)이 있으므로 일어나는 결과(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피어나고, 말이 나오고, 행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잠재의식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이완과 함께 드러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바른 깨달음일수록 한편으론 에고(ego)를 점검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본인이 아무리 무애행(無礙行)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막행막식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저절로 동작이 일어난다는 자발동공(..

배움은 말에서 시작하여 문자(文字)의 이해로 마무리된다. 문자는 사물을 이해하는 도구이며, 진리(眞理)로 통하는 창구이다. 그러므로 문자가 없는 세상은 거의 암흑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우선 종교(宗敎)와 신앙(信仰)에 대한 문자 공부를 해보자. 혹시 종교와 신앙은 전혀 다른 말이란 것을 알고 있는가? 무식하게도 신앙인들은 자기의 믿음을 종교라고 부른다. 깨우쳐야 한다. 종교는 꼭대기(宗) 가르침(敎)이란 말이며, 신앙은 우러러(仰) 받들어 믿는(信)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랑과 평화이며, 신앙은 분열과 전쟁의 대명사가 된다.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고요한 정상(宗)에서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지만, 신앙인들은 결코 자기와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목숨 바쳐 다툰다. 그들은 매우 적..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합니다. 신경(神經)도 보고 듣지 못하고, 뇌(腦) 역시 듣고 보지 못합니다. 듣고 보게 하는 놈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눈과 신경 뇌를 연결하여, 보고 듣게 만드는 작용(作用)이란 놈입니다. 그것이 느끼게 하고, 생각과 감정도 일으키고, 마음도 이리저리 운영합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진여(眞如),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하고 그것을 여실(如實)히 깨우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깨달은 사람이나 무지(無知)한 사람이나 삶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이는 그것을 알므로 주인으로 살고, 깨닫지 못한 이는 그것을 모르기에 노예처럼 삽니다. 깨달은 이는 가진 것이 적고 지위(地位)가 낮아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지만, 무지한 사람은 많은 재산(財産)에 지위가 높아도 ..

돌쇠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아빠가 물었다. “너 지금 뭐하니?” “응, 친구에게 편지 써” “너 글씨 모르잖아” “괜찮아, 그놈도 읽을줄 몰라.” 10분만 정신차려 들으면 알아들을 이야기를 몇 십 년, 몇 백 년을 들었어도 감감무소식, 먼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나는 누구인가?”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첫째, 알려주고픈 마음이 없다. 둘째, 겉으론 듣는 척 해도, 돈이 안 되는 그런 주제엔 관심이 없다. 셋째, 사실 이야기하는 놈도, 듣는 놈도 자기들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코메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