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민정암 시리즈 (5) 무아론(無我論)과 진아론(眞我論) 본문
두 번째 인터뷰를 위해 다시 강화로 향했다.
정암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나는 스스로 변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몰입하여 영화를 보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느껴지던 허무함,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고 들어올 때 느껴지던 외로움, 엄청 힘들게 노력하여 무언가를 이루고 난 뒤에 찾아오던 불안감, 그런 감정들이 이제는 뿌리 없는 오해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나도 깨달았다고 착각하겠네”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등을 꼬집기도 한다. 정확히 무엇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뜻언뜻 보았던 것을 다시 보는 느낌이 자주 있었다. 물론, 성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언뜻언뜻이 아니라 매 순간,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리라.
깨달음 공부도 이제는 시대의 도움을 받는다. 예전에는 애써 스승을 찾아다녀야 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 다양한 성인들의 말씀을 비교해 들을 수 있다. 물론 지식(智識)을 지성(知性: 깨달음)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말씀의 행간을 이해한 사람에게는 큰 축복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내가 하는 이 인터뷰 시리즈도 누군가에게 영감(inspiration)으로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정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늘 우리 가운데 함께 있었다. 그리고 세상 밖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꿰뚫어 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이 사업을 20대 초반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선도 세계화(仙道世界化) 작업 말이다. 그가 지나온 50년, 긴 여행을 하며 스승들을 만나고 행법들을 익혔던 날들이 하나같이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도인(道人)들이 흔한 집안에 태어난 것부터... 그의 고모는 주문(主文) 수련을 통해 “앉아서 9만 리”라는 별명을 가진 “초능력 개안(開眼) 여인”이었고, 작은할아버지는 기차보다 빠른 축지법(縮地法)장이었단다. 당시에는 축지법이 흔했었다고 늘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군자금을 가지고 상해(上海)를 오가는 독립군 연락원이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외삼촌 역시 하루에 서울(京城)과 만주를 오가는 독립군자금 전달책이었단다.
그가 소설 <丹>의 주인공 봉우(鳳羽) 권태훈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의 혜안(慧眼)이 먼저 선생을 알아봤다고 한다. 그분의 부친이 민정암 선생의 할아버지(당시 이왕직 장관)의 비서였으며, 도인이었던 작은 할아버지와도 친분이 꽤 깊었다고 했었다. 그는 허무맹랑할 만한 권옹(權翁)의 이야기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었는데 아마도 늘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듣던 이야기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지금 내년 1월 11일 “氣분 좋은 새해 2020 민정암 강연회”를 앞두고 있다. 그는 3년 전부터 글을 써 블로그(just-look.tistory.com)에 올리면서 하루 방문자가 평균 200명이 넘으면 은둔(隱遁)을 풀고 다시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었는데, 지난 10월 드디어 방문자가 200이 넘었고, 지금은 기본으로 300명을 넘어서서 하루 1,000명의 구독자가 있은 날도 있단다. 그는 그것이 선도 세계화 작업을 시작하라는 사인(sign)으로 받아들인다 했다.
그는 하늘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동안 메시지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일을 벌이다가 몇 번을 파산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의 방엔 “천의동심(天意同心)”이라 쓴 유명서예가 액자가 걸려 있었고, 그것은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란다.
우선 내년에 100명의 선도 교사 후보를 만나는 것이 그의 1차 목표라 했다. 시한을 내년 4월로 두고 있는데 벌써 매주 일요일에 여는 수련회(역삼동)에 15명이 참석하고 있고, 매주 서너 명씩 늘어나고 있단다. 이번 강연회는 나머지 후보들을 모으는 행사라고 했다. 부디 많은 동호인이 모여 그의 뜻이 성사되기를 빌어본다.
* * * * *
‘우리 오늘은 가까운 전등사(傳燈寺)로 자리를 옮겨볼까? 거기에도 좋아할 만한 다방(茶房)이 있어요.’
전등사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은행나무 전설과 대웅전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裸婦像) 이야기로 유명하다.
‘어때요? 산 중 절이지만 춥지는 않지요? 저 벌겋게 달은 장작 난로가 운치도 있고.’
‘네, 노사님 덕분에 전등사 찻집도 구경해 보게 되네요.’
실내는 넓고 분위기는 고급스럽고 아늑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절에 왔으니 불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그럴까? 아무래도 불교 안에 있는 사람보다 나처럼 불교 밖에 있으면서 불교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낫겠지?’
‘요즘 불교 내에서도 무아론자(無我論者)와 진아론자(眞我論者) 사이에 의견 차이가 심한데요, 그 이야기 좀 풀어주세요.’
‘그거 다툼 중에도 큰 다툼이지. 하지만 세상 끝날 때까지 해결 나기는 어려운 다툼이야. 양쪽 모두가 신앙화(信仰化)되었으니 말이야. 내가 볼 땐 소승(小乘)을 신봉하는 무아론자들이 훨씬 더 완고해요. 아 참! 소승이란 말은 그들이 싫어하지. 앞으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상좌부(上座部)라고 불러 드려야겠지. 그들은 초기 경전을 증거로 내세워요. 석가모니가 무아(無我)라 했고, 존재들은 모두 연기(緣起)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배웠는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주장이고, 반면에 진아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에는 눈 하나 까닥도 하지 않아요. 존재는 단순히 이론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석가모니는 “오래 묵은 것이라 해서,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믿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었다고 말이야. 게다가 그들은 체험을 통해서 진아(眞我)를 실감했고, 생활 중에 늘 진아(眞我)를 느끼며 살고 있으니 굳이 경전(經典)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 그들은 이론도 교리도 지나간다고 믿고 있어. 그러니 그들이 더 당당해 보일 수밖에....’
‘그렇다면 노사님은 진아론자이시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라니요? 그럼 바뀔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단언할 수는 없지. 한때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니 말이야?’
‘진짜요?’
‘유튜브 열어봐. 그들끼리 모여 지구가 평평하다는 세미나도 열고 그래.’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란 것이 있기는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있으니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하는 거 아녜요?’
‘그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불교의 기둥 교리인 삼법인(三法印)에 명백히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했고,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오온(五蘊)이 공(空)하다> 했으니,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주장을 간단하게 부정하기는 어려워.’
‘그럼 왜 선불교(禪佛敎)를 비롯한 대승(大乘)에선 진아론을 주장하나요?’
‘말했듯, 대를 이은 체험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모르긴 해도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이유 가운데 무아론(無我論)이 큰 역할을 했을 거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겠지. 개그맨 영구(?)가 아니라면 말이야. 하하, 이건 농담이야.
게다가 석가모니 사후(死後) 제2의 부처라 불리는 나가르주나(龍樹)가 나타나 중론(中論)을 펼쳤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라고 말이야. 팔부중도(八不中道)라고 소개되는데, 태어나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不生不滅)뿐만 아니라, 항상 하지도 단절되지도 않고(不常不斷), 실재(實在)란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不一不異), 오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는다(不來不去). 그것이 진아론(眞我論)의 기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또한 견성(見性)을 하고 나면 나라고 할 만한, 말로는 표현키 어려운 것(言語道斷)이 턱 하니 눈(?)앞에 나타나니 말이야.’
‘노사님도 그런 체험을 하셨어요?’
‘물론이지. 첫 체험은 화두(話頭)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어. 30대 초반 다이내믹 명상(mind control)을 통해 첫 체험을 했지. 실바 메소드(Silva method)의 기본 기법이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거든. 그때는 그것이 그것인 줄 모르고, 단지 염력(念力)을 사용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만 생각했지. 두 번째는 일주일간 용맹정진(勇猛精進) 공부 중에 “한없이 펼쳐지는 고요함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체험이었지. 나중에 화두(話頭) 들고 고생 고생하다가 맥없이 그것이 타파(打破)되어 버리는 순간, 익숙한 풍경이 나타나는 거라. 처음엔 감격이었지.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이 그때 그 체험들과 다르지 않은 거라.
따지자면 요가, 명상하는 사람들, 주문(mantra) 수련하는 사람들, 기독교 성령체험 하는 사람들이 얻는 체험들이 알고 보면 모두 하나로 수렴된다고 나는 생각해. 심지어 수피 댄스(Sufi dance)나 태극권(太極拳) 수련하는 도중에 얻어지는 지복감(至福感)도 일맥상통하고... 하지만 그것이 그것이라는 확신들은 없지.’
‘그래서 30대 초반 체험 후에는 자신을 깨달은 자라고 생각지 못하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는 말이지요?’
‘그랬었지. 원래 쓸데없는 걱정은 하고 살지는 않았어. 체험 후에 점점 건강해지고, “마음이란 이런 거구나, 나란 놈은 계속 변하는구나!” 를 알아챘어도, 견성(見性)했다는 수행자들을 만나면 늘 부러워했었지. 소주천(小周天)을 이룬 선도(仙道)의 큰 선생 노릇을 하며 승가대학(僧伽大學)에 출강도 하면서 살았어도 말이야. 그들이 얼마나 빛나 보였던지... 허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 마음이지. 실제로 많이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계속 더 끌어모으려고만 하고 살지 않아?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서 그래. 오 기자도 힘내요. 보아하니 오 기자도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은데? 다른 여성에 비해 미모도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맞아요. 고작 대학 시간강사인 데다가, 늘씬한 젊은 학생들을 보면 은근히 시기심도 나고, 하하....’
‘무슨 소리야? 일류대학의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고, 맨눈으로 봐도 은근한 매력이 살아 넘친다는 것을 자긴 왜 모를까? 모두들 이렇게도 모르고 지낸다니까.... 쯔쯔’
‘놀리시지 마시고 이야기나 계속해주세요. 그럼 언제 어떻게 스스로 “내가 깨달았구나!”를 알게 되었나요?’
‘눈이 열린 분들과 자주 만나고 깨달음에 관한 책들, 경전(經典)이나 어록(語錄)들을 보면서 꾸준히 수련을 지속하다 보니 아침 해가 뜨듯이 저절로 확신이 오더라고. 특히 나에겐 <황벽어록(黃蘗語錄)>과 <대혜서장(大慧書狀)>이 큰 도움이 되었어.’
‘결국 명실상부 성명쌍수(性命双修)를 하시게 되었고, 달리 말하면 문무겸전(文武兼全)을 하시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노사님을 보면 뭐랄까 자신감이 풍겨 나오시는 것을 느끼겠어요.’
‘쑥스럽구먼. 그런 걸 가리켜 면박(面駁)이라고 한다네. 면전에서 꾸지람을 준다는 뜻이지.’
‘아니에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에요.’
‘문외한인 젊은 여성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기는 하구먼. 도인(道人)도 칭찬을 좋아한다는 말도 있듯이....’
‘그럼 다음엔 봉우(鳳羽) 선생님 만난 이야기와 임자도 단학수련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렇게 하도록 하지. 참 오래된 이야기야.’
(5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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