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성명쌍수여야 하는 이유 본문
견성(見性)을 하고 나면 편안해집니다. 그 후에는 더 알아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없음을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가끔,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이 세상을 비관(悲觀)하여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어떠한 관(觀)을 가지고 사느냐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유입니다만...
見性을 했다고 하는 이들 중 일부는 명(命) 공부, 즉 에너지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생사(生死)의 자유도 얻었으니(究竟涅槃), 구구한 삶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며 은근히 기(氣) 공부하는 선도인(仙道人)을 비웃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깨달음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모두라면 보시(布施)는 왜 필요하며, 지계(持戒) 인욕(忍辱)은 무엇에 쓰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성명쌍수(性命雙修) 즉, 견성(見性)과 득명(得命)이 필요합니다. 심신의 건강 보존과 사회에 대한 봉사, 그리고 풍요로운 대한민국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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