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무엇을 깨달음이라 해야 하는가? 본문
한국의 사찰을 방문한 티벳의 고위 승려(僧侶)에게
한국 불교(看話禪)는 돈오돈수(頓悟頓修)가 목표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티벳 승려는 밝은(놀란) 웃음을 지으면서 정말로 수승(秀昇)한 수행법이라는 찬사의 말을 했다고 한다.
잠시 후 티벳 승려는 "그런데 여기 있는 스님들 가운데 몇 분이 깨달음을 얻었느냐"고 물었는데,
그곳에는 고개를 들고 상대를 직시하는 중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전언(傳言)이 있다.
문제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깨달음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놓는 것이 순서다.
그것을 뒤로 미루고 깨달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망발이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각자가 구구한 사견을 가지고 있겠으나,
불교(佛敎)를 이야기하는 자리인 만큼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고(苦), 즉 번뇌(煩惱)가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가 있다.
어떻게 그 많은 선승(禪僧) 가운데 깨달은 자가 없었는지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선도(仙道)는 굳이 깨달음을 논(論)하지 않는다.
핵심을 말하자면, 단전(丹田)을 지켜볼 뿐이다.
물론 단전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만 가르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영원의 시간에서 볼 때는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명쌍수(性命双修), 즉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으라 말하며
돈과 권력(명예)을 따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라고 권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자연스러운 삶을 말이다.
깨달음이라면, 지금 여기에 있는 내(自我)가 누군지 아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그것을 위해 몇 생(生)을 거듭나며 선업(善業)을 쌓아야 한단 말인가?
알 수도 없는 다음 생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티벳 불교의 몇몇 생을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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