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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1991년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며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 이유로 학장은 물론 목사직에서도 면직됐다. 그의 제자인 이현주 목사는 그가 ‘기독교 안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그런 일은 기독교 뿐 만이 이니라 의외로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특히 불교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불교에 대해 언급을 하면 심히 불쾌해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름없이 배타적(공격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칼라마경에 나오는 부처의 가르침을 같이 읽어보자.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沙門) · 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은 설명하고 드러나게..
커피는 좋은 것이다. 심장에 열을 올려 활성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특히 혼침(昏沈)이 심한 사람의 경우 한잔 정도는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커피를 마셔 불안이나 흥분성태가 지속되거나 수면에 지장이 있다면 양을 줄이거나 삼가야 한다. 커피향이 마음을 끈다면 즐기기만 하라. 그것만으로도 각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매일 여러잔 마시거나 커피없이는 집중이 어렵다면 중독될 수 있다. 내가 주인이 되어야지 절대로 커피에 종속되어선 안된다. 심근경색의 원인도 된다고 하니 그것을 마시고 심장 두근거림이 심해지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소주천(小周天)을 모르고 선도(仙道)를 말할 수 없으며 단전(下丹田)의 활성화가 없는 소주천은 역시 불가능하다. 선도의 순서는 1. 기(氣) 알아채기 2. 단전 가동사키기 3. 소주천 4. 태식(胎息) 이다. 몸이 열리기 전에 함부로 단전호흡을 말하지 말라. 먼저 단전부터 챙겨야 한다. 선도에서 단전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몸이 열려야 단전도 열린다. 복식호흡을 오래한다고 단전호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전을 살려내기 위해선 먼저 코드가 맞는 스승을 만나야 하며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물론 노력이 필요하지만 스승과의 코드맞춤이 더 중요하다. 아니면 수행을 지속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도의 마무리는 태식이다. 태식(胎息)은 2단계 단전호흡이며 소주천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것은 양신(陽神) 즉 에너..
소주천(小周天)이 없는 선도(仙道)는 선도가 아니다.소주천은 선도의 1차 관문이자 핵(核)이기 때문이다.선도의 1차 목표는 건강 그리고 기맥(氣脈)들이 잘 열려있을 때 우리는 건강하다.소주천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의 활성화이며 그것은 전신 기맥들의 사령탑 이 된다.2차 목표는 양신(養神) 즉 에너지체를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체(陽神)는 기(氣)와 의식(神)의 계합체이며 에너지체가 완성될 때 우리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게 된다.소주천의 회전력은 氣를 청정하고 힘차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養神의 기초가 된다.
선도(仙道)는 단전호흡(丹田呼吸)으로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다.단전(丹田)을 모르고 선도(仙道)를 말할 수는 없으며,단전호흡을 모르는 선도는 일반 건강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복식호흡(腹式呼吸)과 단전호흡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복식호흡과 단전호흡은 전혀 다른 것이다. 반복해 말하지만, 하복부를 사용하는 호흡을 복식호흡이라 하고,단전을 사용해서 호흡해야 비로소 단전호흡이다. 즉, 기운을 밀려 들어올 때 단전이 반응해 부풀어 오르고,기운이 수렴(축기)될 때도 단전이 반응하는 호흡이어야 한다. 보통 호흡(복식호흡 포함)과 단전호흡은 횡격막이 반대로 움직인다. 보통은 숨을 들일 때 횡격막이 밑으로 팽창하고, 숨을 내쉬면 횡격막이 위로 움직여 제자리를 찾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단전호흡은 반대다. 단전호흡..
들고 나는 숨을 관찰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그리고 관찰을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알게 됩니다. 숨은 곧 에너지(氣)이기 때문입니다.편안함을 얻는 것에서 공부를 그칠 수 있습니다.하지만 편안함은우리를 잠으로 유도합니다. 그것은 건강에 유리합니다.거기서 공부를 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활용이 목적이라면, 주시력(注視力)을 더 길러야 합니다.주시가 끊기면 에너지도 끊기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단전(丹田)입니다. 단전은 주시의 견인차가 되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자"가 있다. 그것을 "인식(認識)의 주체(主體)"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알아차림 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라.그것이 인식의 주체이다. 알아차림 속에 인식의 주체도 함께 있으니 말이다.
깨달으려면, 생각에 침몰당하지 말고, 생각하는 자가 누군가를 의식해야 합니다.번뇌와 망상이 일을 때, '누가 번뇌 망상하는가?'를 의식한다면, '정정진(正精進)'이라 할 만 합니다.'단전과 의수 하는 자'를 동시에 관조(觀照)해야, 바른 '의수단전(意守丹田)'입니다.하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생활 자체가 수행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무슨 뜻일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에 마음 두지 말고, '의문을 품고 있는 자'를 의식해야 합니다. 그것이 속히 깨닫는 비결입니다.
함부로 자타일여(自他一如)를 말하지 마십시오.그러다 큰코다칩니다.잠시 상대와 내가 하나로 느껴졌다고 '우리는 하나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저의를 의심받게 됩니다.'나는 우주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세요.남들은 정신 나갔다고 생각합니다.먼저 '그 자리'를 찾도록 하십시오.그리고 그 자리에 안주하십시오.그 자리엔 같은 것도 다른 것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주도 하느님도 없습니다.그 속에 살지 못하는 한, 그리 말하지 마십시오.그 속에 살고 있어도 혼자만 알고 있으세요.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분별하고 있는 내가 있고, 분별하는 나를 지켜보는 놈이 있다. 분별은 번뇌(煩惱)를 부르지만, 지켜보는 놈은 순수함 자체로 있다. 오매일여(寤寐一如)란, 번뇌가 사라진 상태가 언제나 있음을 말한다. 동산(東山)이 물 위를 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남풍(南風)이 불고, 전각(殿閣) 밑이 서늘함을 알아차리는 놈에겐, 산란과 갈등이 없다. 자나 깨나 화두(話頭)가 들린다는 것은, 지켜보는 놈이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화두란 의미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놈을 알아채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