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승 (41)
谷神不死
선가(仙家)에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가 되지 못한 사람에겐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누가 정하는가? 그것은 타인(스승)이 정하는 것이 아니요, 배우는 자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조금 얻은 것으로 기고만장하여 스승 앞에 머리를 치켜드는 사람은 됨됨이가 덜된 사람이라 봐야 한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에게는 전하려 해도 전할 수 없다. 귀를 닫아 놓고 있기 때문에 몇 년을 스승 곁에 있어도 진전이 늦다. 그러므로 미리 판단하지 말고 쉽게 전해진다면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애를 써봐도 전달하기 어려운 사람은 됨됨이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바른 제자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
편의상 우리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 빙의(憑依)만을 빙의라 하기로 한다. 빙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신(神)에 의한 빙의이고, 하나는 외부 귀신에 의한 것이다. 내부의 신에 의한 빙의는 설득이나 약간의 푸닥거리로도 퇴치가 가능하지만, 외부 귀신이 들린 것이라면 웬만한 수단으로는 퇴치가 쉽지 않다. * * * 빙의는 보통 신경쇠약, 조울증, 조현병, ADHD를 앞장세운다. 빙의에도 저급 귀신의 빙의와 고급 귀신의 빙의가 있다. 저급의 귀신은 자신과 타인에게 소소한 어려움을 주지만, 고급의 귀신은 다르다. 경우에 따라 일시적 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억압이나 파괴 등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또한 결정적 순간이 아니면 빙의 상태를 잘 드러내지 않고, ..
보기엔 잡놈 같은데 몸을 맡길만한 구루(guru; 영적 스승)가 있는가 하면, 보기엔 그럴듯해도 사이비인 구루가 있다. 구루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구루가 입은 옷, 사는 집으로 구루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면도로 밀었다고, 상투를 틀고 도포를 입었다고 좋은 구루는 아니다. 제자들에겐 힘들고 어려운 수행을 강요하면서, 자기는 같이 하지 않는 구루는 사이비일 공산이 크다. 나이가 있더라도 수행할 때는 언제나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구루에게 배워야 성공한다. 너무 구차하게 살거나 돈을 너무 밝히는 구루에게 배울 것은 거의 없다. 여자를 멀리하라 가르치거나 너무 밝히는 사람도 그리 바람직한 구루가 아니다. 구루라면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선(線)을 대려 하거나 그들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리..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그런 사람에게는 수행도 크게 필요 없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이미 결정 난 사항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겐 오직 숭배 행위만 필요하다. 신앙에 대해 학문적 고찰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때 신학이라는 것은 단지 신앙의 대변일 뿐이다. 하지만 수행자에게는 큰 신앙이 필요치 않다. 수행이란 자기를 닦아내 그 밑에 자리 잡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므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이나 부처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 철학과 인문학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유와 논리를 중요시하며 사는데, 만나보면 쓸데없는 이론에 너무 시간을 쓴다는 느낌을 받게 된..
스승은 스타팅 모터와 같다. 그가 당신에게 에너지를 줄 때 스타팅 모터는 돌아간다. 스타팅 모터가 돌아가는 동안 엔진 시동이 걸려야 한다. 그때 탱크에 기름이 있어야 한다. 기름이 충분하다면 엔진은 계속 제 일을 할 것이다. 스승 옆에 있을 땐 깨달은 것 같다가, 집에 온 다음 날 바로 속인(俗人)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머리)으로 깨닫는 것은 부족한 깨달음이다. 몸으로 깨달아야 진정한 깨달음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공부가 아니라면.. 그런 깨달음은 불안하다. 세상 속에서 깨달아 있어야 한다. 좋을 때나 슬플 때, 성공을 거두었을 때나 실패했을 때, 언제나 깨달음이 여여(如如)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겠는가? 에너지(氣)를 마음에 대..
가벼운 옷을 입어야 편합니다. 몸에 옷을 맞춰야지, 옷에 몸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아집은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그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스승이 아닙니다. 사이즈가 맞아야 편합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많이 찾아 헤매다 보면, 당신에게 맞는 스승도 있는 법입니다. 스승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 앞에 서면 당신이 내려놓아지는 사람, 그가 진정한 당신의 스승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이즈가 커지면 그의 사이즈도 커져야 합니다. 새로운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과거엔 자식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좀 심하지만 "당장 집에서 나가라"거나, "호적에서 지운다"고 위협을 했다. 자식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었다. 근본이 없는 자식이 되어 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관직에 등용이 어려웠고, 사회로부터도 사람대접받기가 어려웠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일은 고금에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자식이 부모를 떠나버리는 일이 너무 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뒤집혔다. 이제는 재산을 미리 모두 자식에게 물려준 부모는 그들로부터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세상이다. 그뿐이 아니라, 혹시 쫒겨날까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퇴직한 남편도 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은 학교나 수행처에서도 일어난다. 이젠 스승이 제대로 제자를 훈육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물론 물려줄 밑천..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스승을 모시는 사람은 자기주장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초심자에게 지도자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즐기라고만 한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진 수행자는 다르게 대한다. 자기주장을 고집한다는 것은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술 담배를 자제하라거나 특별한 공법(功法)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선도(仙道)를 즐기는 것, 약간의 건강 호조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스승의 지시를 흘려듣거나 거부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 때는 최소한 견성(見性)을 이루고, 소주천(小周天) 1단계를 완성하고 난 이후부터여야 한다. 그전에 스승의 말을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된다. 스승의 초점은 언제나 제자의 진보에 맞추어져 ..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콤비네이션을 이루어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하는 말이다. 깨닫기 위해서도, 소주천(小周天)을 이루는 데도 마찬가지다. 스승과 제자가 힘을 합쳐야 수월하게 뜻을 이룬다. 스승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小周天을 신선대학(神仙大學) 입학허가서라고 한다. 그것이 신선이 되는 관문(關門)이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 공부는 먼저 단전(丹田)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도 상당한 성의(誠意)가 필요하다. 성단(成丹)이 되려면 외단(外丹)과 내단(內丹)이 상합(相合)이 필요하다. 수탉이 있어야 병아리가 태어나듯이 내단술(內丹術) 만으론 부족하며, 외단공(外丹功)이 ..
외단공이 효과적이려면 동료(道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단전(丹田)의 활성화는 혼자 애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몇몇이 함께 닦는 분위기 속에 들어가야 수월하다. 특히 소주천(小周天)은 필히 스승과의 에너지 동조(同調)가 필요하다. 스승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그를 신뢰해야 한다. 불씨가 단전에 머물 때까지 늘 그와 함께여야 한다. 정신적으로 늘 한통속이어야 한다. 기운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스승과 멀어져서는 안 된다. 스승과의 인연은 헛도수를 진주천(眞周天)으로 바꾸니 말이다.